작성자 : 라키스 작성일 : 2019-03-06 12:46:56 조회수 : 648
국가 : 베네수엘라 언어 : 한국어 자료 : 사회
출처 : 문화일보
발행일 : 2019-03-06
원문링크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30601031709040001

 

▲  지난 2월 22일 베네수엘라 국경과 접한 콜롬비아 도시 라파라다의 한 시장에서 한 남성이 베네수엘라 볼리바르화 지폐를 접어 만든 핸드백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가 이 같은 핸드백을 만들어 팔아 버는 돈은 월 2.5달러 정도다. AP 연합뉴스

- 베네수엘라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생존 위해 밀수 · 절도 · 구호품 의지… 일부 유럽원정 성매매도

계란이 ‘꿈의 식품’ 된 지 오래
치솟는 가격에 휘발유 밀수 기승
마두로 화폐교체 땜질처방 한계

거래 금지된 달러가 ‘화폐의 王’
포퓰리즘으로 국가 경제 무너져


‘이페르 인플라시온(hiper inflacion)….’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상품가격은 의미가 없다. 자고 나면 천정부지로 가격이 올라 눈에 띄는 대로 물건을 사야 한다. 몇 시간 뒤면 가격이 변하므로 비싼지 싼지 따져볼 겨를은 물론 망설일 필요조차 없다. 그나마 물건이 있는 상점도 드물다. 베네수엘라 국회가 지난 1월 9일 발표한 2018년 인플레이션율이 170만%, 정확히 169만8488%로 상상조차 되지 않는 숫자다. 국회 주장대로라면 한국 가격으로 따지면 1000원 하던 사과가 1년 만에 1700만 원으로 오른 셈이다. 더구나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인플레이션율을 무려 1000만%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카라카스에서 300g 사과 1개가 243볼리바르 소베라노(Bs.S) 정도인데 내년에는 2430만 Bs.S로 오른다. ‘한 국가 두 대통령’ 카오스 상태인 정치적 분쟁의 결말을 넘어 181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남미 민주주의 원조국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베네수엘렌들이 지금 어떻게 살아가는지 국제사회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베네수엘라를 배신했어요.”  
세 자녀의 엄마인 마리릴 알마는 지난 2월 자신의 힘으로는 아이들을 더 이상 먹여 살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급기야 첫째 아이의 양육권을 포기했다. 일주일 전에는 사흘 일하면 계란 12개를 살 수 있었지만, 이제 같은 개수의 계란을 사려면 엿새를 일해야 한다. 계란은 서민들의 값싼 단백질 공급식품이지만 카라카스에 사는 대다수 사람에게는 ‘꿈의 식품’이 된 지 오래다. 둘째와 셋째 아이라도 살리려면 첫째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는 방법밖에 없다.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알마는 과거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지지자였지만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태도가 바뀌었다”고 전했다. 올해 52세의 리스베스 아네즈는 지난해 5월 구금됐다. 그녀의 죄목은 휘발유 밀수.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는 가격에 주변 나라에서 휘발유를 몰래 들여오다가 당국에 검거됐다. 정부의 엄격한 법 집행으로 그녀는 118일을 창문조차 없는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 석방 이후 그녀는 마두로 반대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매일 거리로 나섰다. 그녀는 영국 인디펜던트지 인터뷰에서 “감옥생활이 내 삶을 바꾸었다”며 “진정한 악이 무엇인지 이제 알게 됐다”고 말했다.  

마두로 정권은 화폐교체로 하이퍼 인플레이션 위기를 막고 있다. 지난해 8월 마두로 대통령은 10만 볼리바르 푸에르테(Bs.F)를 1Bs.S로 바꿨다. 물론 이전에도 화폐교체는 있었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역시 2008년 1월 1000볼리바르를 1Bs.F로 평가절하했다.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치솟으면서 과거의 화폐로는 유통이 불가능해졌다. 돼지고기 1㎏을 사려면 궤짝에 돈을 넣어 다녀야 할 만큼 기존 화폐로는 거래가 어려웠다. 물론 화폐교체는 땜질식 처방으로 현재 추세대로라면 매년 새 화폐를 내놓아야 한다. 현금이 사실상 의미가 없어 대부분의 거래가 카드로 이뤄지는 실정이다. 정부는 미국 달러 거래를 금지하고 있지만, 베네수엘라에서 ‘달러’가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4일 AFP통신은 “베네수엘라에서 달러는 왕”이라고 전했다. 카라카스에서 3000Bs.S는 1달러로 환산된다. 월평균 최저임금 4000Bs.S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다. 

현재 최악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일반 베네수엘렌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세 가지 정도로 나뉜다. 아예 삶을 포기하고 정부 구호품에 100% 의존하거나 밀수와 절도 같은 범죄에 나서는 방법이다. 아니면 미국과 인근 국가로 나간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친인척들이 보내주는 돈에 의지하는 경우도 있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베네수엘라를 탈출한 여성들은 중남미는 물론 유럽, 아시아로 가서 몸을 팔기도 한다. 베네수엘렌들은 임시대통령을 자처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과 마두로 대통령 지지자로 갈려 있다. 저소득층에서는 석유 기업 국유화를 단행하고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강화한 중남미 좌파의 상징인 차베스 전 대통령을 계승한 마두로 대통령을 여전히 지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최대 석유매장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포퓰리즘 정책, 부정부패로 얼룩진 사회주의 정부로부터 등을 돌리는 베네수엘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제교 기자 jk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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