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Latin America | 작성일 : 2014-12-29 14:06:41 | 조회수 : 501 |
국가 : 쿠바 | 언어 : 한국어 | 자료 : 정치 |
출처 : 연합뉴스 | ||
발행일 : 2014.12.24 | ||
원문링크 : 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4/12/24/0607000000AKR20141224061600087.HTML | ||
공산당 기관지에 입장 표명 여부 주목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동경 특파원 = 쿠바에서 혁명을 이룩하고 공산주의를 심은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입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53년 만에 양국 국교 정상화를 발표한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던 만큼 그의 반응이 큰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쿠바의 공산당 기관지인 '그란마'에도 그의 움직임은 보도되지 않고 있고, 일부 외국 언론들은 침묵하는 피델의 건강 등에 관한 추측만 할 뿐이다. 피델이 미국과의 이번 국교 정상화 결정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쿠바 현지의 한 소식통은 "외교 분야에서만큼은 아직은 피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피델이 이번 일에 배제됐을 가능성을 낮게 봤다. 피델은 올해 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포함해 중남미 각국 정상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왕성한 '자택 외교'를 했다. 반 총장은 피델을 만나고 난 뒤 기자회견에서 "정신적으로 기민하고 육체적으로 강했다"며 "국제사회의 현안을 꿰뚫고 있어 인상깊었고 감명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피델이 국내외에 큰 이슈가 있을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곧 그란마의 '피델의 성찰'이라는 칼럼난에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에 관한 글을 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는 작년 4월 북한의 위협으로 한반도 전쟁 위기가 고조되자 칼럼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북한과 남한 어느 쪽도 이득이 없는 끔찍한 살육이 될 것"이라며 자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가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에 관한 칼럼을 실을지도 관심이지만, 어떠한 내용이 담길지가 더욱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피델은 혁명 원년인 1959년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경제 원조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고, 그에 반발해 미국 기업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몰수하는 한편 옛소련을 포함한 공산권 국가들의 원조를 받으면서 미국과는 점점 멀어졌다. 1961년 4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쿠바 망명자들을 훈련해 피그만을 침공하자 피델은 이를 격퇴하고 공산화를 본격적으로 선언하면서 미국과의 국교는 단절됐다. 미국이 1962년 쿠바에 금수조치를 취하자 피델은 옛소련의 협력으로 경제를 지탱해왔으나 1980년대 중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펴면서 소련을 포함한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과의 교역과 지원이 점점 끊겨 경제적인 어려움에 봉착하게 됐다. 1984년 4월 고르바초프가 쿠바를 방문해 소련식 개방 정책을 권유했으나 피델은 이를 거부, 소련과의 관계도 멀어져갔다. 이후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 국가들과 외교를 맺었고 1992년에는 법을 개정해 외국계 기업들의 투자를 받아들였다. 관광산업을 육성해 국가 재정의 근간이 됐지만 서민들의 생활 형편은 개선되지 않았고, 미국으로 탈출하는 '보트피플'을 양산했다. 2008년 의장직을 물려받은 동생 라울 카스트로는 2011년 실질적인 '1인자' 자리인 공산당 제1서기에 선출되면서 주택과 차량 매매 허용, 은행 대출 승인, 자영업 허용 등 경제개혁법안을 통과시켰고 이후 이를 하나씩 실행해왔다. 라울 카스트로 의장은 실용주의에 입각한 경제 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를 선언하고 나서도 국가 체제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천명했다. 이는 피델이 이룩한 혁명의 정신을 훼손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비친다.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발표한 다음날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의 머리기사의 제목은 '돌아왔다'였다. 이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간첩행위를 한 죄로 투옥돼 16년간 갇혀 있던 쿠바 정보요원 3명이 이번에 석방됨으로써 앞서 석방된 2명과 함께 이른바 '쿠바인 5명'이 모두 귀환한 것을 말한다. 그란마는 10개 면에 걸쳐 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가족, 친지와 상봉하는 사진들을 가득 게재하면서 '혁명의 승리'라는 표현을 썼다. 그란마 1면의 머리사진은 라울 카스트로 의장과 이들 5명이 함께 서 있는 것이었으나, 머리기사에는 '피델이 말한 것처럼 그들이 돌아왔다'는 내용이 담겼다. 2001년 피델은 대중 연설을 통해 "그들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장담한 바 있다. '혁명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피델의 영향력을 여전히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피델이 펜을 든다면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 내용보다는 귀환한 영웅들의 얘기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다시 손을 잡은 동생의 정책은 용인하지만 자신이 펼쳐온 반미 정책을 스스로 부정하는 말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점쳐진다. 쿠바 혁명 직후 경제 원조를 거부하면서 공산주의의 길을 걷게 한 원인 제공자는 미국이었고, 그런 미국이 쿠바를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 정책의 실패를 스스로 인정한 뒤 결자해지를 했다고 피델은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hopema@yna.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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