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채무조정 불응 헤지펀드 보유채권 즉각 상환 판결
아르헨 대통령 "한푼도 못줘".."아르헨에 대한 모욕"
(서울=연합뉴스) 선재규 기자 = 미국 법원이 아르헨티나의 과거 채무 구조조정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함으로써 자칫 이 나라가 또다시 '기술적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제기됐다.
미국 연방 법원 판결에 대해 아르헨티나는 "벌처 펀드를 부추기는 것"이라며 즉각 불복해 외교적 파장으로까지 비화할 수 있을 전망이다.
벌처 펀드란 부실기업이나 부실채권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올리는 자금으로, 썩은 고기를 먹고 사는 독수리의 습성에 비유해 붙여진 명칭이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23일 자에서 이 문제를 1면 머리기사로 다루면서 이것이 유로 위기 등과 관련해 국가 채무 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22일(이하 현지시각) 아르헨티나가 지난 2002년 디폴트를 선언하고 채무를 구조조정할 때 응하지 않고 채권을 보유해온 헤지펀드 등에 모두 13억 3천만 달러를 상환하도록 판결했다.
법원은 아르헨 정부가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오렐리우스 캐피털 매니지먼트 등 채권단에 상환할 돈을 내달 15일까지 예치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 대통령은 22일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선언했다.
아르헨 의회도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채무 조정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또 '아르헨과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고 발끈했다.
전문가들은 아르헨의 불복으로 법정 공방이 계속되면서 자칫 미국 대법원까지 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은 아르헨이 끝까지 버티면 미국 법정이 과거에 이뤄진 채무 조정분에 대한 상환에 제동을 걸면서 그 돈을 동결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것은 아르헨이 기술적으로 또다시 디폴트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르헨은 채무 구조조정에 응한 채권단에 지난 2005년과 2010년 새 채권을 교환해줬으며 그 금액이 모두 합쳐 240억 달러가량이다.
세계은행에서 일하다 미국 법률회사 아널드 앤드 포터로 옮긴 위트니 드부보아 변호사는 FT에 이번 판결이 채권단으로 하여금 채무 위기국을 제소할 수 있는 선례로 활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현재 그리스가 채무 구조조정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여기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 나가서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등이 위기국을 구제하는데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르헨에 대한 판결은 금융시장에도 즉각 영향을 미쳤다.
외신은 미국 국채에 대한 아르헨 국채 수익률 스프레드가 이 판결에 영향받아 더욱 벌어졌다고 22일 전했다. 그만큼 투자자 우려가 커졌다는 의미다.
또 채권 부도 위험을 상품화한 부도신용 스와프(CDS) 프리미엄도 2천400bp(1bp=0.01%)를 넘어 지난 2009년 5월 이후 최고치에 접근한 것으로 전문분석기관 마르키트가 집계했다.
지난 10월 초 만해도 아르헨 CDS 프리미엄은 1천bp에 그쳤음을 외신은 상기시켰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2/11/23 08:09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