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자 : 임두빈 | 작성일 : 2026-10-26 14:08:14 | 조회수 : 8 |
| 국가 : 브라질 | 언어 : 한국어 | |
| 출처 : 부산외국어대학교 임두빈 교수 | ||
| 발행일 : 2026.10.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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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브라질 대통령 선거를 두 개의 기록과 하나의 질문으로 읽어본다. 룰라는 민주화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1차 투표 2위가 결선에서 역전한 최초의 후보가 됐고, 통산 네 차례 대통령에 당선된 최초의 인물이 됐다. 그러나
브라질 앞에 놓인 질문은 기록보다 무겁다. 이 나라는 승자를 선출하는 데서 나아가, 패자가 결과를 받아들이는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는가. 역사적인 역전,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보우소나루주의 룰라의 역전은 결코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다. 나만 해도 1차 선거 결과 후 보우소나루 가문의 승리를 엿보았으니... 브라질고등선거법원(TSE)의 1차 투표 발표에서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는 개표율 99.99% 기준 47.03%, 5,610만 4,268표, 룰라는 45.16%, 5,387만 6,617표를 얻었다. 약 223만 표 뒤진 현직 대통령이 결선에서 판세를 뒤집은 것이다. 브라질은 역대로 1차 선거에서 진 후보가 당선된 적이 없었다. 4선 당선 대통령과 함께 새로운 기록이 두 개 탄생한 셈이다. 여기서 '4선'은 네 번의 연속 집권이 아니라, 2002년·2006년·2022년에 이은 네 번째 당선을 말한다.
나는 이 결과에서 룰라의 정치적 회복력을 보았다. 동시에 그가 자신의 힘만으로 브라질의 분열을 끝내기는 어렵다는 사실도 목도하고 있다 보우소나루 가문의 후보가 패했다고 해서 보우소나루주의가 소멸한 것은 아니다. 현지 언론은 플라비우의 패배가 가문의 지도력을 약화시킬 수 있지만, 복음주의·치안·농업 부문 등에 뿌리내린 정치 운동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분석하고 있다. 불복의 핵심은 '표 조작'보다 '투표 기회의 불평등'이다 플라비우의 대선 결과 불복 발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하다. 그는 구체적인 전자투표 조작 자료를 제시하기보다,
‘룰라의 전 변호사이자 친구인’ 자닌 대법관의 투표시간 연장을
공격했다. 그의 핵심 표현은 "경기 도중 규칙을
바꿨다" 는 것이었다. 실제 결정의 경위는 그의 발언보다 복잡하다. 연방대법원 공식 설명에 따르면 사건은 바이아주의 사우바도르·페이라 지 산타나·라우루 지 프레이타스에서 대중교통 운행이 줄었다는 문제 제기에서 출발한다. 자닌은 전국적 투표 연장을 명령했지만, 후속 설명에서는 오후 5시에 아직 투표함이 닫히지 않은 곳에만 오후 7시까지 연장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미 종료한 모든 투표소를 일괄 재개한 것은 아니었다. 바로 이 대목에 검토할 쟁점이 있다고 본다. 같은 교통 장애를 겪었더라도 소속 투표소가 이미 종료됐는지에 따라 추가 투표 기회가 달라졌다면, 그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플라비우가 "내가 얼마나 더 득표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집계된 표의 정확성보다 투표하지 못한 사람들의 기회를 문제 삼은 것이다. 그러나 문제 제기와 선거 전체의 무효는 같은 말이 아니다. 그 차이가 실제로 어느 지역에서 얼마나 발생했고,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자료로 입증해야 한다. BBC News Brasil 영상에서 플라비우가 제기한 자유당 참관인 퇴거 주장도 구체적인 경위가 확인돼야 한다. 의혹을 제기했다는 사실 자체가 부정선거의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더구나 G1(글로부 뉴스)에 따르면 플라비우 진영도 폭우와 정전 등의 피해 지역에 두 시간 연장을 요청했다. 따라서 논쟁은 '연장이 언제나 부당한가'가 아니라, 누가, 어떤 권한과 기준으로, 어느 범위에 적용했는가에 있겠다고 생각한다.
선거법원장의 답변: "문제는 조사하되 결과는 인정한다" 누니스 마르키스 선거법원장의 공식 발언은
플라비우와 다른 결론을 제시했다. BBC News Brasil에 따르면 그는 교통 문제를 조사하겠다고
했으며, 자닌의 결정이 "절차상의 어려움" 을 낳았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럼에도 브라질고등선거법원(TSE)이 어려움을 극복했고 연장 결정이
결과를 바꾸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의 직접적인 표현은 다음과 같다. "선거 과정 전체에 대해 우리가 확고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 발언을 "아무 문제도 없었다"는 선언으로 읽지 않고 있다. 교통 장애는 조사하고, 운영상 혼란은 인정하되, 그것을 당선 결과의 부정으로 연결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읽었다. 플라비우가 절차상의 문제에서 선거 무효를 도출한다면, TSE 법원장은 책임 규명과 결과 수용을 분리한 것이다.
다만 법원장의 담화만으로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모든 질문이 해소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공개된 짧은 발언에는 실제 연장 투표소 수, 추가
투표자 수, 지역별 분포와 결과 영향에 관한 상세한 분석이 없었다. 집계가
정확했다는 설명과 투표 기회가 공평했다는 설명은 구별돼야 한다. TSE의 판단이 불복 지지층까지 설득하려면 그 근거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네 번째 당선 이후의 진짜 시험은 '룰라
없는 브라질'이다
브라질의
'정치적 내전'은 실제 무력 내전이 아니라, 상대
진영의 집권 자체를 정당하지 않다고 여기는 양극화의 비유로 사용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나는 이번 당선으로
그것이 끝나리라고 보지 않는다. 갈등을 줄이려면 민주적 우파와 협상하되 선거 불복과 정치폭력에는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고, 선거 운영에 대한 비판에는 자료로 답해야 한다고 본다.
여기에 룰라 자신의 후계 문제가 겹친다. 여든 살의 대통령이 다시 승리했다는 것은 그의 역량을 입증하지만, 중도좌파
연합이 여전히 그에게 의존한다는 사실도 드러낸다. '후계자가 없다'는
말은 후보가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룰라의 대중적 호소력과 연합 구성 능력을 이어받을 후계
구도가 확립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개인적인 바램이지만 룰라는 자신의 네 번째 임기를 자신의 정치적
불가결성을 확인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것을 줄이는 시간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본다. 차세대 지도자가 독자적인 성과와 책임을 쌓게 하고, 자신이 출마하지
않아도 작동할 조직과 연합을 만들어야 할 시간이다.
결국 이번 선거의 역사적 의미는 두 개의
기록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룰라가 권력을 다시 얻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또 다른 브라질이 패배를 받아들이고 다음 경쟁을 준비하는 규칙을 지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플라비우에게는 의혹을 증거로 입증할 책임이 있고, 고등선거법원에는 신뢰를 투명성으로 뒷받침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룰라에게는
자신이 없는 이후에도 그 규칙이 자생하도록 만들 책임이 있다.
나는 4년 전 룰라의 당선을 '내전의 서막'이라고 불렀다. 왕의 귀환, 돌아온 룰라…내전의 서막을 알리다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97369 (교수신문) 당시에도 강조했듯, 브라질에는 보우소나루 이전에도 보우소나루들은 존재했다. 한 정치인의 패배만으로
그를 만들어낸 불평등과 지위 불안, 배타적 공동체의 욕망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에 아들 플라비우가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선거 무효화를 요구한 장면은 그 문제를 다시 묻게 한다. 다만 법적 이의제기 자체를 반민주주의로 취급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의혹을 증거로 입증하고, 그 판단을 내릴 공통의 절차를 받아들이느냐는 점이다.
누니스 마르키스 고등선거법원장은 투표시간 연장에 따른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선거 결과의 신뢰성을 확인했다. 불과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본 익숙한 장면이기도 하다. 플라비우가 절차상의 불균형에서 결과의 무효를 도출했다면, 법원장은 문제의 조사와 결과의 인정을 분리했다. 바로 여기에서 내가 4년 전 지적한 '민주주의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가 다시 드러난다. 한국도 남의 말을 할 처지는 아니지만, 브라질의 과제는 승자를 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패배한 쪽도 결과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의혹은 입증하고 기관의 판단은 검증 가능한 근거로 설명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룰라의 네 번째 승리가 이 갈등을 종식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가 또다시 돌아왔다는 사실보다, 그가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때 무엇이 남을지가 중요해졌다는 점이다. 4년 전의 질문이 '왕은 돌아와 무엇을 할 것인가'였다면, 이제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왕이 없어도 브라질의 민주주의는 작동할 수 있는가. 아니면 또 다른 왕을 섬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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