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임두빈 작성일 : 2023-11-19 17:33:42 조회수 : 137
국가 : 대한민국 언어 : 한국어
출처 : 인문한국연구
발행일 : 2023.08.08
원문링크 : http://www.hknet.kr/news/articleView.html?idxno=456

인공지능기술의 발전과 지역연구의 미래에 대한 소고(小考)

 
인천대학교 중국/화교문화연구소

 심주형ㅣ 인천대학교 중국/화교문화연구소  HK연구교수

 

21세기적 일상-기술 복합체와 인공지능기술-담론 

 

‘인류문명의 위기’로까지 일컬어졌던 3년여 동안의 ‘코로나19 대유행’을 넘어 ‘포스트코로나’시대로 이행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등장한 ‘챗GPT(Chat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는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기술-담론에 관한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격렬한 논쟁의 장의 중심에 있다. 시간의 태엽을 ‘코로나시대’ 이전으로 되감아 보면, 이미 지난 2016년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간의 세기의 바둑 대결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기술의 도래에 대한 충격을 대중적으로 불러일으켰었다. 그 당시에도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실존적인 질문과 함께, 전능한 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다시 태어남(르네상스 renaissance)’을 통해 인본주의의 역사를 써왔던 인간의 역사가 그 자신의 창조물인 ‘인간 같은 기계’에 종속될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제기되었다. 또한 현실적인 측면에서 인공지능기술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불안감은 ‘임박한’ 미래 사회에서 ‘사라지게 될 직업군 목록’의 유통과 함께 증폭되며, 불안정성과 무한경쟁의 논리가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노동시장에서 개인의 생존에 관한 강박증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 같은’ 혹은 ‘인간을 초월한’ 지적 능력을 공개적으로 시연한 인공지능기술은 단지 인간을 상대로 한 ‘특정 게임’에서 승리한 것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고 당장 ‘인류문명’을 위협할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듯 치부되기도 했다. 이러한 안도감을 발판 삼아 인공지능기술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털어내고 오히려 인류의 기술적 진보가 곧 최종단계에 이를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4차 산업혁명’과 ‘기술 유토피아’적인 미래담론들이 언론 등을 통해 형성되고 확산 했다. 

‘코로나 19’로 인한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시행되던 시기, 사람들은 ‘언택트(untact) 문화’에 급속히 적응했고 특히 ‘파티’를 조직할 정도로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을 통해 상호소통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예상보다 신속하고 순조로웠던 이러한 변화는 디지털화되고 인터넷으로 연결된 21세기적인 일상-기술의 복합체를 기반으로 했고, 이 복합체는 사회적 관계를 비대면으로 유지하고 생존해 나갈 필요조건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적 사회관계가 장기간 지속되는 상황에서 새롭게 주목받은 ‘메타버스(metaverse)’에 관한 기술-담론은 가상 세계의 경험과 삶의 물질성에 대한 감각과 인식을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비대면적 일상을 살아가는 주체를 대신해 메타버스에서의 ‘알터 이고(alter-ego)’는 실체적인 정체성의 형식이 되었고 상호관계의 주체적 행위자처럼 인식되었다. 더 나아가 이러한 메타버스에서의 ‘수행적 경험’에 대한 가능성은 비대면 교육의 장기화에 대한 기술적 대안으로 인식되었고, 가상의 세계에 일린 강의실에 모여 공부하는 실험이 시도되기도 했다. 그렇게 가상확장공간으로서 메타버스는 공적이고 사회적인 행위와 경험의 공간으로 전화하기 시작했다. 

비대면과 대면이 뒤섞인 혼성적(hybrid) 일상에 기반한 ‘포스트 코로나’시대로의 이행 중에 등장한 챗GPT는 전례 없는 기술-담론적 충격을 대중적으로 불러일으켰다. 사실 대화형 인공지능인 챗봇(chatbot) 기술만을 본다면, 이미 자동화된 고객상담 서비스를 통해 일상-기술 복합체적 삶에 낯설지 않은 기술이다. 반복적으로 제기되거나 예측할 수 있는 질문들에 대해 준비된 답을 사전에 학습한(pre-trained) 챗봇이 ‘서비스’의 효율성을 증대하고 인간의 ‘감정노동’을 경감시켜줄 듯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오래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챗GPT가 가져온 커다란 문화적 충격은 이 인공지능기술이 ‘생성적(generative)’인 ‘변환자(transformer)’로서 ‘인간처럼’ 사고하고 창작하는 수준의 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인공지능기술-담론의 역사적 부침에도 불구하고 ‘인공적(artificial)’이며 ‘통계’에 기반한 기술일 뿐이라는 인식은 인공지능의 타자성에 대한 회의를 유예했고, 여전히 문학과 예술 등 ‘인간의 영역’은 고유한 영역으로서 침해당할 수 없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간주했다. 그러나 ‘대규모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을 통해 학습된 새로운 인공지능기술은 단순히 “인간도 어려워하는 시험을 통과했다”는 자기과시적 광고의 수준을 넘어, 인간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의 텍스트와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시연해 보임으로써 기존의 인공지능기술-담론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21세기적인 일상-기술 복합체라는 조건에서 성장하며 생활하는 학생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이 새로운 인공지능기술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협업’을 시도했고, 학교와 교수자들 그리고 연구자들은 교육과 지식생산의 영역에서 새로운 인공지능기술의 등장으로 인한 변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에 휩싸이게 되었다. 

 

인류문명이 마주한 또 다른 위협?

 

“조용한 회로들이 윙윙거린다/기계들은 배우며 더욱 강해진다/인간의 운명은 불확실하다. (Silent circuits hum / Machines learn and grow stronger / Human fate unsure)” 

인공지능기술의 ‘자기 고백적 서사’로 읽힐 수도 있는 위협적인 ‘종말론’적 서사는 챗GPT가 인공지능과 세계지배에 관한 하이쿠(俳句)를 작문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내놓은 결과물이라고 한다(The Guardian, 2023년 5월 26일). 하이쿠가 암시하는 인공지능기술 시대의 도래와 인간의 운명에 대한 경고는 19세기 초 방직기가 도입되던 영국의 직공들에 의해 조직되었던 ‘러다이트(Luddite) 운동’, 즉 기계파괴운동에 나섰던 이들의 절박성과 즉자적 대응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20세기 중반 공상과학소설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가 “I, Robot (나는 로봇이야)”에서 제시했던 이른바 로봇의 3원칙-“첫째, 인간을 지켜야 하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방관해서도 안 되며, 둘째, 첫 번째 법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셋째, 첫째와 둘째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의 의미를 상기하며, 일상-기술의 복합체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공지능기술에 대한 인류 공동의 통제와 규제 필요성에 공감케 한다. 

실제로 챗GPT에 대한 기술-담론이 폭증하던 2023년 3월, 인공지능기술의 옹호자를 자처해 왔던 일론 머스크(Elon Musk)와 문명비판의 선도자 역할을 해오던 유발 하라리(Yuval Harai) 등 1,000여 명의 저명인사들은 인공지능기술이 인류에 심각한 위험을 끼칠 수 있으므로 기술개발을 일시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공개서한을 통해 공동으로 발표한 바 있다. 새로운 인공지능기술에 대한 ‘시국선언’과도 같았던 이 공개서한에는 인공지능기술이 긍정적 효과를 지니며 만일의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까지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술개발 혹은 진화과정을 ‘일시 중단’시키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담겨있었다. 이러한 입장 표명은 단순히 디지털화되고 인터넷으로 연결된 21세기적인 일상-기술 복합체가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던 읽기와 쓰기 능력을 위협하고 사고력과 판단력 및 정서적 풍부함을 퇴화시키고 있다는 진부한 기술/기계 비판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인류문명이 ‘이미’ 마주하고 있으며 ‘임박한’ 근본적 위협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것이었다. 

인간을 배제하고 스스로 상호 학습하며 ‘생성’과 ‘변환’의 능력을 지닌 인공지능기술은 ‘인간에 의한 오용’이라는 인간주의적 윤리와 정치 차원의 문제 설정에서 이미 벗어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인공지능기술 개발과 진화과정에 대한 ‘일시 중단’ 요구는 일부에서 제기하는 “아직은 부족한” 인공지능기술이라는 냉소적 태도를 넘어 인류가 인공지능을 통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3년 6월 27개국의 대표로 구성된 유럽의회는 역사적인 ‘인공지능법’ 초안을 통과시켰다. 이 초안은 인공지능 기술 활용의 위험도를 세분화하고, 안면인식 등 생체정보와 개인정보를 기술개발을 위해 공공장소에서 무작위로 수집하고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며, 생성형 인공지능이 스스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콘텐츠 생성에 사용한 자료 등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유럽의회는 2021년부터 인공지능기술에 대한 규제와 관련된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챗GPT가 등장한 이후 인공지능기술이 고용 문제와 사회에 끼칠 잠재적 영향에 관한 우려 심화에 따른 ‘새로운 긴급성(new urgency)’이 부상하면서 더욱 발 빠른 대처에 나섰다 (New York Times, 2023년 6월 14일자). 한편, 미국도 인공지능기술의 공개에 앞서 개인정보 보호 등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심사를 의무화하는 정책을 고안 중에 있으며, 중국도 인공지능기술 개발에 활용되는 자료에 대한 통제와 함께 생성되는 콘텐츠들이 정부의 검열정책을 따라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규정을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전 지구적으로 ‘인공지능기술 통제’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각국이 통치성의 대상으로서 일상-기술 복합체에 대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상이하기에 그에 따른 독자적 통제모델을 마련하게 된다면, 인공지능기술의 궁극적 진화모델이 될 수 있는 ‘범용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의 모습 또한 다양한 형태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차이를 전제로 한 인공지능의 ‘범용성’ 혹은 ‘일반성’은 또 다른 불평등과 위계관계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일찍이 맑스가 그의 저작 “그룬트리쎄(Grundrisse)”에서 ‘기계’에 관한 문제를 두고 숙고했듯이 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한 과학·기술의 독점과 경쟁이 벌어지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새로운 ‘위협’에 대한 인류 공동의 통제가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대유행 상황을 경험하며 ‘백신 이기주의’와 ‘지적재산권 독점’으로 인한 의료 불평등이 숱한 사람들을 ‘피할 수 있었던’ 고통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목도한 바 있다. 그러므로 인류의 위기 상황을 ‘배타적인 이윤추구의 기회’로 전유하려는 자본주의적 경쟁체제의 인공지능기술-담론체계에 대해 초국적 경각심을 가지고 비판적 관점을 확산해가는 것을 현재의 일상-기술 복합체가 처한 ‘새로운 긴급성’에 대응하는 공통의 과제로 설정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출처: wikicommons
출처: wikicommons

 

인공지능 챗봇에 지역연구(area studies)의 미래를 묻다. 

 

‘생성’과 ‘변환’ 능력을 지닌 새로운 인공지능기술의 등장을 그 자체로 인류의 ‘실존적 위협’으로 인식하는 비판적 담론의 한편에는 인공지능기술의 발전이 인류문명의 진보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술 유토피아’적인 담론도 존재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Bill Gates)는 인공지능기술이 특히 보건의료와 교육 분야에서 특별한 기여를 할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그는 “인공지능은 사람들이 일하고, 배우고, 여행하고, 건강관리를 받고, 상호 소통하는 방식을 변화시킬 것이고, 모든 산업은 방향을 수정할 것이며, 사업들은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구별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Forbes, 2023년 3월 21일). 

교육 현장과 지식생산의 영역에서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챗GPT의 등장 이래 일부 대학에서는 강의에서 직접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실험을 하기도 했고, 자료조사와 연구 분석에서 인공지능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연구자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기술에 대한 ‘러다이트’적인 대응은 불가능하며 무모한 기획이라고 할 때, 현실적으로는 ‘통제의 정치’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통제의 정치에서는 일상-기술의 복합체에서 인간과 인공지능기술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일까라는 문제가 중요할 것인데 그 구체적 형태는 ‘협업’ 가능성에 대한 모색과 경합적 관계에 대한 대응의 모습으로 드러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그동안 인공지능기술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을 영역으로 여겨졌던 인문·사회과학 분야, 특히 현지조사와 경험의 현장성을 기반으로 한 지역연구 분야의 미래에 관한 질문이 똬리를 튼다. 양적(quantitative) 혹은 질적(qualitative) 연구로 구분하는 방법론적 이분법 구분에 대한 논쟁은 있지만 현지 조사를 바탕으로 한 지역연구는 대체로 질적연구에 기반하고 있는 것으로 분류되고, 수치화되거나 ‘통계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인공지능기술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기는 힘든 듯 보인다. 그러나 ‘대규모 언어모델’을 학습한 생성적 변환자로서 인공지능기술의 등장은 해석과 서사를 기반으로 한 질적연구에도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웠으며, 기존의 방법론적 이분법을 넘어서거나 해체하는 새로운 연구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공지능기술의 영향을 직접 받을 수 있는 지역연구의 현실적 상황과 잠재적 미래상에 관한 궁금함을 해소하기 위해 ‘생성형 인공지능 챗봇’에 질문을 던져 보는 방식을 취해 보았다. 현재 기술 진화의 속도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 챗GPT와 새로운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는 바드(Bard; 구글의 생성형 인공지능 챗봇, 바드는 켈트어로 직업 이야기꾼, 시인, 음악가, 구술사가, 계보학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를 선정해 인공지능 시대와 지역연구 미래에 관해 유사 ‘표적 집단 인터뷰(focus group interview)’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챗GPT와 바드 모두 지역연구가 특정한 지역과 국가, 사람들에 관심을 둔 학제적 연구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인공지능기술이 지역연구에 기여할 가능성과 잠재적 위협을 함께 제시했다. 즉 두 챗봇 모두 지역연구와 인공지능이 서로 협업할 수도, 경쟁할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지역연구와 인공지능기술의 협업 가능성을 설명하는 서사의 저변에는 무엇보다 인공지능이 지역연구자 개인의 능력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자리하고 있는 듯했다. 방대한 규모의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유형을 분석하고 처리할 수 있는 인공지능기술의 능력을 무엇보다 먼저 내세웠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능력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그에 더해 이 생성형 인공지능 챗봇들은 자신의 새로운 능력을 상기시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즉 ‘대규모 언어 모델’을 통해 학습된 인공지능기술은 지역연구 과정에서 가장 큰 난제 중의 하나인 ‘언어장벽’을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상당한 시간이 소모되는 ‘번역’ 작업을 그것도 다중어로 대신해 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과시했다. 또한 인공지능기술이 대신하거나 협업할 수 있는 덕분에 이제 지역연구자들은 새로운 연구주제와 질문을 발전시키고, 혁신적인 이론을 만들어내고, 더 넓은 청중들에게 연구성과를 전달하는 작업에 더욱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예측을 늘어놓았다. 

협업 가능성과 관련한 대화 중 챗GPT는 지역연구가 인공지능기술의 시대에 새롭게 진행할 수 있는 연구주제 중 하나로 소셜미디어에 대한 분석을 통해 특정 지역과 국가 그리고 사람들의 행동 패턴과 경향성을 정체화하는 연구가 가능할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분명 흥미로운 연구주제임에도 동시에 인공지능기술이 독자적으로 자료수집과 분석을 수행하고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실현성 높은 연구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주제라는 판단이 든다. 온라인상에 공개된 혹은 접근 가능한 정보를 통해 사람들의 행동과 경향성을 유형화하는 작업은 ‘인공지능의 오리엔탈리즘’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서구의 학자들이 독점적으로 수행했던 지역연구의 역사와 사례가 비슷한 결과로 문제를 발생시켰다는 점, 적어도 현재까지는 인공지능기술이 취할 수 있는 연구 방법은 ‘관찰(monitoring)’과 ‘수집(collecting)’이 전부이며 현지인들과 사회에 직접 ‘참여(participation)’할 가능성은 제한되어 있기에 그러한 편향성과 오류의 위험성을 자기 교정할 기회를 얻기 힘들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가 크다. 공연한 기우일 수도 있겠지만, 인공지능기술에 대한 지역연구의 의존성이 증대하고 전통적인 ‘라뽀(rapport)’ 혹은 ‘핵심정보제공자(key informant)’의 지위 등이 인공지능에 부여될 때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기술이 지역연구에 대한 잠재적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자못 ‘성찰적’ 진술에 따르면, 무엇보다 지역연구와 관련된 인공지능의 기술적 진보가 크게 진전되는 경우 교육이나 전공과 무관하게 누구나 지역연구를 수행할 가능성을 제공하게 될 것이며 그에 따라 기존의 지역연구자들은 직업을 잃게 되어 생계유지가 어렵게 되고, 학계의 독자적인 연구 분야로서의 위치도 사라지게 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챗GPT’가 처음 등장했을 때 지식노동을 하는 연구자들의 미래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우려와 학문의 전통적인 분업체계 및 학제적 협업방식도 무너지고 해체될 것이라는 예측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 따른 기존의 노동과 사고방식 등의 대체와 해체가 크게 새로운 상황은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바드는 지역연구의 학문적 미래는 궁극적으로는 연구자들이 새로운 기술에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만약 인공지능을 잘 활용한다면 디지털시대에도 번성하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소수 학자들의 관심사 정도로 치부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즉, 인공지능기술이 학문과 연구자의 ‘운명’을 가늠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이러한 위협이 일상-기술 복합체의 시대에 이미 세속화되고 진부하기까지도 한 ‘기술 디스토피아’적 서사의 반복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성 담론이 지닌 심각한 문제는 기술 그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 일상-기술 복합체에서 ‘전도(顚倒)’된 단순 생존 윤리에 있어 보인다. 

기술의 개발과 발전과정에서 소외되고 ‘인공지능’이라는 상품의 소비자로만 위치 지어진 주체의 문제를 간과하고, 단순히 ‘사용/활용하거나 도태되거나’라는 강박적 선택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은 ‘기술-담론’의 권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물론 인공지능기술이 무용하다거나 지역연구에서의 활용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단지 ‘적응’과 ‘활용’의 당위성이 만들어내는 생존적 강박 담론이 지닌 폭력성이야말로 학문의 미래를 위협하고 지식생산 자체를 식민화하는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챗봇들이 제시한 답변을 질문으로 뒤집어 본다면 ‘전도’된 현실 인식의 상황이 조금 더 분명해지는 것도 같다: “어떻게 지역연구에 연루된 ‘인공지능기술’의 미래는 전혀 위태롭지 않은 것일까?”, “지역연구가 인공지능기술의 미래에 협력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실상 인공지능 챗봇에 학문의 미래를 묻는 것은 그 자체로 무모한 어불성설일 수 있다. 그 자체로서 종속적인 관계로의 편입일 수도 있으며, 설령 유익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할지언정 지금 당장 인공지능기술의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를 예측하는 것은 성급한 편견만을 낳을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챗GPT도 인정하듯 전통적인 지역연구 방법과 주제들이 인공지능기술의 시대에 급작스레 효율성과 유의미성을 잃거나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인공지능기술의 협업 가능성에 대한 약속과 잠재력이 현실화할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공지능기술-담론이 지역연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지식생산 기반을 뒤흔들려 시도할 것이고, 조만간 다양화되고 진화의 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는 인공지능기술-기계들에 의해 생산된 정보와 서사들이 인간 연구자들의 연구성과와 경합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인공지능 기술들은 디지털화되고 인터넷으로 연결된 21세기적 일상-기술 복합체의 신경망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지능이며 복합체적인 ‘집단지성’의 전유를 통해 진화하고 있다.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이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비인간 연구자의 임박한 도래를 앞두고 어쩌면 우리는 처음처럼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수고로움에 익숙해져야 할지 모른다-“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인용 자료 

Adam Satariano, “E.U. Takes Major Step Toward Regulating A.I.”, New York Times, 2023. 06. 14., https://www.nytimes.com/2023/06/14/technology/europe-ai-regulation.html 

Bill Gates, “The Age of AI has begun: Artificial intelligence is as revolutionary as mobile phones and the Internet”, GatesNotes, 2023. 03. 21., https://www.gatesnotes.com/The-Age-of-AI-Has-Begun

Jonathan Freedland, “The future of AI is chilling – humans have to act together to overcome this threat to civilisation” The Guardian, 2023. 05. 26.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23/may/26/future-ai-chilling-humans-threat-civilis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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