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이창우 작성일 : 2012-12-14 00:19:49 조회수 : 682
잃어버린 도시를 찾아서

등록 : 2012.12.12 18:27     수정 : 2012.12.13 14:52

잉카제국의 고도 마추픽추.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남미 여행의 보석 페루 잉카유적지 쿠스코·마추픽추 기행

페루 잉카 유적 탐방은 고산병(고산증)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추픽추 등 잉카 유적 탐방의 거점도시 쿠스코에 도착하자마자 한 일이 코카 잎을 씹거나 코카 차를 마시는 일이었다. 쿠스코는 해발 3400m에 자리잡은 도시.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어지러움이 느껴지는 가운데 코카 잎을 맹렬히 씹어대며 잉카인들의 유적지 탐방을 시작했다. 현지 가이드는 "숨을 깊게 쉬고 되도록 천천히 움직이라"고 조언했다. 고산병은 고지대에서 산소 부족으로 겪게 되는 증세. 두통·어지럼증이 흔히 나타나는 증세. 심하면 구토·호흡곤란 또는 심장마비 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마추픽추의 계단식 농경지.

잉카제국 유적 탐방의 핵심은 뭐니뭐니 해도 마추픽추다. 쿠스코의 역사를 잠깐 들여다보자. 기원전 1000년 전부터 마르카바예 부족이 살던 곳으로, 이후 와리(우아리) 문명인들과 12세기 시작된 잉카 문명인들이 차례로 차지했다. 잉카인들은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며 에콰도르·볼리비아·칠레 일부까지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며, 스페인 침략으로 무너질 때까지 쿠스코를 수도로 삼았다. 마추픽추는 9번째 왕인 파차쿠티가 황제로 즉위한 뒤 건설한 여름별장 도시다. 정복한 나라 백성들을 노예로 삼아 만든 정교한 돌의 궁전이다.

해발 3400m 쿠스코
고산병 어지럼증에
코카 잎 씹으며 행군

쿠스코 부근 마을에서 만난 민속품 노점.

해발 3400m인 쿠스코에서 해발 2400m의 마추픽추로 가려면 오얀타이탐보를 거쳐 5시간 동안 열차를 타고 내리막길을 달려가야 한다. 쿠스코 주변 마을을 둘러본 뒤 오얀타이탐보에서 열차를 탔다. 마추픽추로 향하는 열차 여정은 내내 아마존강의 최상류인 우루밤바강 물줄기와 함께한다. 물길을 따라 우거진 숲과 옥수수·감자 등이 자라는 밭들이 평화롭고 아늑해 보인다. 간혹 배낭을 메고 물길·산길을 따라 걷는 이들이 보인다. 이른바 잉카트레일을 따라 걸어서 마추픽추로 향하는 도보꾼들이다. 시작 지점에 따라 3박4일 또는 하루 일정으로 걸어서 여행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열차 종착역인 아과스칼리엔테스는 흔히 마추픽추라고도 부르는 온천마을이다. 물길과 산비탈을 따라 발달한 마을이 아기자기한 일본의 산중 온천마을을 닮았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지그재그 산길을 20분 오르면 마추픽추다. 급경사를 따라 버스가 오르는 동안 창밖으로 펼쳐지는 산봉우리들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계단을 따라 전망대로 오르자, 무수한 화강암 석축들과 건축물, 3000개의 계단으로 이뤄졌다는 500여년 전 잉카제국의 고도 마추픽추의 전모가 드러났다. 정면에 보이는 봉우리가 해발 2800m의 와이나(우아이나)픽추, 뒤쪽 봉우리가 3000m의 마추픽추다. 도시 유적은 그 사이 해발 2400m 낭떠러지 위에 자리잡았다. 절벽 양쪽으론 무수한 계단식 석축들이 이어진다. 그 밑으로 굽이치는 우루밤바 강줄기가 아득하다. 도시는 태양의 신전과 콘도르의 신전을 중심으로 주변에 왕족들 주거지와 일반인들 주거지가 배치돼 있다. 이 산정 도시에 모두 170여가구 1000여명이 거주했다고 추정된다. 빈틈 하나 없이 쌓아올려진 성벽과 축대, 수로와 샘, 이동로와 각 건물의 방들이 하나하나 들여다볼수록 정교하기 그지없다. 가이드 워싱턴(37)이 태양의 신전 돌벽에 난 두개의 창문을 가리켰다. "이 두 창문은 각각 정확히 남쪽과 북쪽을 향해 나 있다. 매년 동지와 하지 때 햇빛이 창을 통해 들어와 신전의 제단을 비춘다."

3000개의 계단으로 이뤄진
잉카제국의 고도 마추픽추
석조물 정교함 저절로 감탄이

마라스 염전.

철기를 쓰지 않았다는 이들이 이 엄청난 규모의 화강암 돌성을 어떻게 완성했을까? 워싱턴은 "산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갈라진 화강암 조각들을, 강에서 가져온 단단한 철광석을 이용해 다듬어 수많은 노동력을 들여 쌓아올렸다"고 설명했다. 1450년부터 90년간에 걸쳐 느리게 진행된 대역사였다. 여기엔 잉카인들에게 정복당해 노예가 된 부족들의 피땀 어린 노동력이 바쳐졌다. 황제 파차쿠티가 죽은 뒤에도, 황제의 환생을 믿고 노동에 시달리던 노예들은 스페인 침략자들이 파차쿠티의 미라를 불태우자, 마침내 감옥 같던 이 돌 도시를 앞다퉈 떠났다고 한다.

탐방을 마친 이들은 입구 옆 로지 식당에서 감동을 되새기며 코카 잎차를 마시거나 간식을 먹는다. 식당 한쪽에서 마추픽추 정경 사진의 엽서를 쌓아놓고 편지를 쓰고 있는 50대 여성을 만났다. 남편과 함께 뉴욕에서 왔다는 로렌 벨(58)이다. 리마·쿠스코를 둘러보고 왔다는 그는 "아름다운 경관을 함께 즐기기 위해 모든 여행지에서 엽서를 보낸다"며 "아이들과 친척, 그리고 1살 난 손자에게도 멋진 마추픽추의 경관을 얘기해 주겠다"며 밝게 웃었다.

마추픽추는 잉카 유적 탐방의 시작에 불과하다. 쿠스코 주변엔 눈을 크게 뜨고 볼 만한 무수한 유적들이 널렸다. 대개 스페인 침략자들이 파괴하고 새 건물을 세워 건물들의 기초와 성벽만 남은 유적들이다. 친체로·오얀타이탐보·피삭 등 마을에서 잉카 유적지와 스페인인들이 지은 여러 건축물들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우루밤바 강가의 마을 피삭엔 민속품 등을 파는 상설 전통시장이 열려 들러볼 만하다.
잉카인들의 유적지 중 돋보이는 볼거리가 해발 3600m에 위치한 원형 계단식 농경지 모라이 유적과 해발 3400m 계곡에 만들어진 암염 염전인 마라스 염전이다. 모라이 유적지는 잉카인들이 감자·옥수수 등의 품종 개량을 시험하며 마련한 일종의 농경기술 연구단지로 추정된다. 숲에 묻혀 있다가 1932년 미국 탐험가 시피가 항공촬영 중 발견했다고 한다. 마라스 염전은 암염 성분이 섞인 샘물을 계단식 염전에 받아 소금을 생산하는 곳. 잉카 이전 문명의 사람들이 소금을 만들기 시작한 이래 지금도 옛 방식 그대로 월평균(4~10월) 300t의 질 좋은 소금을 생산하고 있다.


쿠스코(페루)=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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