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라키스 작성일 : 2021-05-04 13:46:52 조회수 : 291
국가 : 멕시코 언어 : 한국어 자료 : 사회
출처 : 뉴시스
발행일 : 2021-05-04
원문링크 : https://newsis.com/view/?id=NISX20210504_0001429094&cID=10101&pID=10100
스페인정복시대(1519~1521) 500주년- 멕시코 독립 200주년 맞아

마야족 저항의 중심지에서 내무장관이 수백년 만행 사죄

 

 

[멕시코시티=AP/뉴시스]4(현지시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식당 종사자들이 금속 식기를 두드리며 코로나19 '적색경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멕시코 정부가 지난해 11월부터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수도권에 '적색경보'를 발령했으며 멕시코시티는 이를 완화해 식당은 야외 공간에서 사회적 거리를 두고 음식을 제공할 수 있게 됐지만 거리 두기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지 않은 식당이 많아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2021.02.05.

[서울=뉴시스] 차미례 기자 = 멕시코 정부는 3(현지시간북미의 마지막 원주민 항쟁이기도 했던 1901년 마야족의 최후의 항전 기념일을 맞아  수백년에 걸친 이들에 대한 야만적인 착취와 차별대우에 대해서 사과했다.

AP
통신과 국내 매체들에 따르면  이 날 행사는 당시 항전의 중심지였던 마야족의 펠리페 카리요 푸에르토에 있는 작은 마을 티호수코에서 거행되었다.

이번 행사는 1519~1521년 멕시코에 대한 스페인 정복시대 500주년과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멕시코의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는 더 광범위한 기념 행사들의 일환으로 치러졌다.

이 자리에서 올가 산체스 코르데로 내무장관은 "수백년 동안 이 곳 사람들은 착취와 탄압, 폭력에 시달리며 고통 받았다오늘 우리는 우리가 오랜 세월 부인해왔던 것들즉 마야족에 대해 우리가 저질렀던  모든 불의와 만행을 모두 인정한다"고 말했다.

 "
오늘 우리는 멕시코 정부의 이름으로 우리 역사 전체를 통해서 마야족 여러분에게 가해진 차별과 박해지금도 그 희생자가 되어 있는 온갖 만행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내무장관은 말했다.

이 자리에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도 과테말라의 알레한드로 지아마테이 대통령과 함께 참석했다두 나라는 마야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이웃나라들이다.

퀸타나 로의 마야족들은 1847년부터 1901년까지 멕시코 식민자들과 정부군에 대항해서 "카스테스 전쟁"이란 이름의 일대 항전을 이어갔다그들 가운데 일부는 아직도 카리브해 해안지대에 살고 있다그 항전은 1901 5 4일과 5일 사이에 멕시코 군대가 펠리페 카리요 푸에르토를 체포함으로써 끝났다.

멕시코의 마야족은 그 후에도 살아남았지만,  1974년이후 칸쿤과 플라야 델 카르멘 같은 해안관광지를 중심으로 발달한 부유한 관광산업으로부터는 대체로 소외당했다대개는 소규모의 영세농이나  과수재배, 아니면 관광지의 건설 노동자나 청소부 같은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왔다.

마야족 활동가 알파로얌 카눌은 "우리는 우리민족이 위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모범을 세우고자 한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우리 이름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지만 그 돈은 한 푼도 우리 지역사회에는 나타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칸쿤의 남쪽 해안은 이름이 " 리비에라 마야"이며 그 곳의 수상공원은 "마야 문명"으로 장식되어 있지만 마야족의 대다수는 아직도 퀸타나 로주의 저개발지역과 펠리페 카리요 푸에르토의 벨리즈 주 경계선 남쪽의 빈민지대에 살고 있다.

얌 카툴은 오브라도르 대통령에게 국가 자연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길고긴 망그로브 해안을 마야족이 관광지대로 개발, 운영할 권리를 달라고 요구했다그 곳 시안 칸 자연보호구역은 길이 120km에 달하는 해안선으로 무려 53만 헥타르의 망그로브 숲, 습지얕은 만과 연못 등이 있는 지역인데  "우리에게 아무런 상의도 없이 무자비하게 약탈해간 지역"이라는 것이다.

이 곳은 소수의 탐방객들만 찾을 뿐호텔 한 곳도 없다환경전문가들은 습지와 망그로브 숲은 아주 민감해서 어업이나 관광산업을 본격화할 경우 파괴되기 쉽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야족은 저항의 중심지였던 펠리페 카리요 푸에르토 (옛 이름은 찬 산타 크루스)를 마야의 도로 하고 민중봉기의 중심지였던 이 곳을 성역으로 삼아 재기해 볼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마야족은 1800년대엔 사이잘헤네켄 같은 용설란 종류의 선인장을 기르는 농장에서 노예처럼  강제 노동을 했다이 선인장의 섬유는 로프를 만드는 원료로 쓰였다.

심지어 마야족의 일부는 실제로 쿠바의 사탕수수밭으로 노예로 팔려가기도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cmr@newsis.com

Quick Menu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