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상섭 (한국외대 중남미 연구소 연구교수)
2015년 6월 1일 쿠바와 미국은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재정립했다. 채 1년도 안되어 2016년 3월 22일, 미국 민주당 오바마 정부의 88년만의 쿠바 방문은 또 다시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이는 1959년 쿠바혁명을 계기로 비록 지정학적으로 가장 근거리에 위치해 ‘좋은이웃(good neighbor)’으로 상호 공존/공영해 와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양국은 ‘가깝지만 먼거리’로 존재해 왔다. 하지만 근래의 양국 간의 우호적인 정치 외교적 제스처들은 점점 더욱 가까운 이웃국가로 상호관계 회복을 추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따라서 3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이 갖는 함의는 다양한 관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특히 오랫동안 닫혔던 양국 관계가 실질적인 정상화 국면으로 진입해 가는데 있어 국제정치적 함의는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양국 간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1928년 캘빈 쿨리지 대통령(미국 30번째 대통령 공화당 출신, 1923년 – 1929년 집권)이후 88년 만이자 미국 국내 정치 차원에서 보면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의 ‘힘의 균형’에서 민주당 출신으로 처음으로 그리고 20세기 이후 미국 정치외교 차원에서는 두 번째 방문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정치적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보면 88년 만에 미국 정상의 쿠바 방문은 미주 대륙에 남아 있던 마지막 냉전 구도를 깨뜨리는 상징이자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빗장을 풀기 위한 외교적 행보로 분석 가능하며, 국제정치 차원에서 보면 유럽과 이웃국가들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쿠바와의 정치경제 협력증진, 특히 21세기 들어 중국과 쿠바 간의 정치경제적 협력 강화에서 중미-카리브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감소에 따른 존재감 상실 증가 및 이에 대한 미국의 주도권 확보 차원의 전략적 외교라는 의미를 갖는다.
특히 2016년 11월 미국 국내 대선을 코앞에 둔 상태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말 미-쿠바 관계 회복 노력은 민주당 정권 초기부터 약속한 미국의 대 쿠바 고립 정책 해제라는 민주당 오바마 정권의 마지막 외교 전략으로 분석되며 이는 특히 2016년 대선 이후 어느 당, 혹은 어느 대통령 후보가 새로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더라도 차기 정부 입장에서 대 쿠바 정책을 과거로 '되돌릴 수 없는 것'(irreversible)"으로 만들기 위한 일종의 쇄기 전략외교이자 또한 차기 정권으로 하여금 양국 간의 최대 현안인 쿠바에 대한 ‘경제금수조치 해제’를 위한 일종의 사전작업 외교로 평가할 수 있다.
양국 간의 가장 큰 현안인 미국의 대 쿠바 금수조치 해제문제에 대한 전망은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 이후 및 미국 차기 정부도 어느 정도 혹은 어느 부문까지 경제제재에 대한 해제가 진행될지는 사실 양국 간의 복잡한 국내외 정치경제적 셈법에 따라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예를 들어, 해제조치에 가장 강한 카드를 쥐고 있는 미국 의회에서 불협화음(특히 공화당의 반발), 미-쿠바 사이 인권 이슈와 경제 이슈 사이 빅딜의 어려움, 무엇보다도 재제 해제와 더불어 발생한 급속한 경제자유화 이후 쿠바 시장의 능동적 수용 능력 등의 문제 등은 당장 경제재제 해제라는 쿠바측 입장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 이후 미국인들의 쿠바 여행 해제가 풀렸는데 이는 점진적인 관계회복은 물론 향후 실질적 경제관계 발전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단지 소극적 의미의 경제재제 완화 조치라는 의미로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이를 평가하지만 사실 쿠바의 주 수입원이 관광자원임을 감안하면 이는 향후 엄청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2015년 관광을 위해 쿠바를 방문한 외국인은 350만 명). 특히 2016년 말부터 진행되는 미국 관광객의 급증은 향후 쿠바의 관광인프라 개발 및 관련 서비스 산업의 발전 등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모의 증가에 비해 향후 ‘지속가능한 관광업’(예를 들어 경제발전과 환경보호, 카리브 해양보호, 관광산업에서 발생하는 수익 재분배를 통한 사회적 평등 실현 등)에 대한 비판적 의견도 상당히 존재함도 주지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 방문 이후 쿠바 국내에 미칠 영향들은 몇몇 관점에서 확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미-쿠바 간 갈등의 중심이었던 해묵은 냉전 개념의 정치적 이데올로기 논쟁이 줄어들고 21세기 현안인 민주주의, 거버넌스, 인권, 신재생에너지, 지속가능한 발전 등의 분야에서 국제협력에 대한 아젠다들이 양국 외교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물론 이를 능동적으로 추진해 가기 위해서는 걷어내야 하는 쿠바의 내적인 장애요소들, 예를 들어 쿠바혁명 1세대들의 존재(2018년 라울 카스트로 퇴진 약속), 쿠바공산당의 독주, 쿠바군부의 강력한 지배 구조 등의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민주주의, 인권, 거버넌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상당할 정도의 내적 저항과 개혁에 대한 지연 요인들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쿠바 공산당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개방 및 개혁과 자영업의 등장 등은 변화해 가는 쿠바에 희소식이며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은 이러한 쿠바 내 변화 움직임을 좀 더 가속화시키는 데에 일조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금번 방문에서 갈등의 핵심이었던 쿠바의 인권문제와 정치범 문제 거론은 쿠바 사회 내에서 민주주의 및 인권 향상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켰다는 데에 상당한 의의가 있다. 미-쿠바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비록 화해 제스처지만 2015년 쿠바 내 53명의 정치범들(반체제인사들)을 석방했지만 인권의 문제는 여전히 쿠바 혁명 체제의 아킬레스건이다. 1992년 설립된 미국 플로리다 주에 본부를 둔 비영리기구 쿠바인권재단(FHRC) 보고에 의하면, 반정부 단체 및 반체제 인사들(인권 운동가, 독립 언론인, 그리고 다른 비평가)들에 대한 단기 및 임의 체포 관행,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여행 제한 및 이동 제한 등이 최근에도 증가해 오고 있으며 특히 이들에 대한 직장해고 등의 극단적 조치는 생존권마저 위협하면서 또 다른 억압 수단으로 활용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쿠바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은 종종 형사 처벌의 위협에 직면해 있으며 이들은 독립적이고 공평한 법정에서 그리고 적법 절차에 의한 사법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등, 실제로 쿠바 법원은 행정부 및 입법부에 "종속" 상태라고 비판받고 있다. 이에 더하여 표현의 자유를 보면, 정부는 쿠바의 모든 언론 매체를 제어하고 심하게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제한함은 물론 외부 정보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비록 정보 취득과 표현의 자유가 허용된 독립적인 웹사이트들이 존재하지만 이마저도 정보 접근을 위해서는 높은 비용과 종종 정보 제한 조치를 당하기 일쑤다. 수도인 하바나, 남부 제 2의 도시인 산티아고 데 쿠바, 또는 산타 클라라 같은 대도시에 있는 쿠바인들은 좀 더 나은 인터넷 인프라로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지만, 더 많은 농촌 지역의 사람들은 온라인 접근조차 상당히 열악한 상황이다. 금번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인권 개선 요구는 다수의 쿠바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지만 위와 같은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단기적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과 쿠바의 관계 개선은 향후 한-쿠바 간의 관계에도 상당히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쿠바의 외교적 시계추가 점차적으로 미국으로 그리고 미국의 지렛대를 활용한 한국으로 점차 옮겨질 가능성이 크며, 실제로 한-쿠바 간 많은 교류 협력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기존과는 달리 대표적으로 쿠바를 대상으로 한 국제개발협력(삼각협력) 사업 증가, 한국 상품의 쿠바무역 증가, 한류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협력 증가, 쿠바에 한국 관광객의 증가 등에서 이러한 신호들이 감지되고 있다. 특히 쿠바 내에서 북한의 입지가 작아지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가 증가하면 기존의 냉전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 쿠바-북한 간 정치 외교적 혈맹보다는 무역과 투자에서 더 많은 상호 이익 창출과 국제협력이 가능한 경제적 동반자로서 한국-쿠바 관계 발전이 가능해 보인다. 따라서 최근 미국의 대 쿠바 관계회복 흐름 및 현존하는 대내외적 장애요인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가능성 전망은 역시 다양한 관점에서 복잡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쿠바 국교정상화의 문제는 가장 먼저 북한이라는 변수가 개입되어 있으며 더욱이 미국과 중국 그리고 유럽,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의 관계들을 고려한 ‘다층적 관계’ 구도 속에서 전망이 필요하기도 하다. 한-쿠바 국교정상화 가능성에 대한 최상의 시나리오는 쿠바 국내의 정치변동(혁명1세대의 정치퇴진), 미국과 중국의 용인, 한-쿠바 국교 정상화 협상 과정에서 북한 배제(혹은 북한의 용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우호적 협력(멕시코) 등이 시기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맞아야 가능하다. 무엇보다는 이러한 최적의 시나리오를 맞추기 위해 지속적인 경제, 무역 및 문화 협력이 필요하며, 특히 한국 국내 정책 결정자들의 대 쿠바 국교정상화를 위한 내부 협상(상호 의견 및 통일된 국교정상화 노력 정책 개발 및 상호통합적 전략 조율)의 진전이 중요하다.
사실 한-쿠바 국교정상화를 통한 우리나라의 기대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00만 인구는 작지만 한국에게 있어 새로운 소비시장이 될 수 있으며, 쿠바를 거점으로 한 카리브 공동체에 대한 선린외교 강화 차원에서 쿠바는 카리브 외교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 새로운 관광산업 투자지로서 쿠바 접근도 고려 대상이다. 특히 라틴아메리카 역사 및 문화연구(식민문화, 해양문화) 차원에서 쿠바의 역사성과 지역성은 학술적으로 많은 활용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에 더하여 애니깽을 포함해 한국의 대 쿠바 이민역사 차원에서도 쿠바는 이미 가까이 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효과는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해 현 정부의 ‘신뢰외교’를 쿠바에서 직접 실현해 직간접적으로 북한을 개방개혁으로 유도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이 갖는 의미를 다시 한 번 평가해 보는 노력은 위와 같은 많은 다층적 의미들과 복잡한 구도의 국제정치 및 국내 정치경제적 변수들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