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용(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
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의 남미순방에 대해 두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하나는 기자만 아는 이야기. 다른 하나는 누구나 알만한 이야기다. 물론 기자만 아는 이야기도 여기저기 퍼져있다. 언론보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만 한 내용이다. 그래도 기자만 알고 있다고 ‘믿고 싶은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흥미로우니 이것부터 시작해보자.
박근혜 대통령 남미순방 막전막후
대통령의 해외 순방계획은 보통 몇 달 전 또는 늦어도 한 달 정도 전에 언론에 알린다. 순방동행취재가 걸려 있어 계획 수립 초반부터 대략 언제쯤 간다는 정도의 정보를 알려준다. 그리고 순방 10일 전후로 최종 날짜가 통보된다. 남미 순방 역시 3월 중순에 알려졌다. 중동 4개국 순방을 다녀 온 직후여서 해외순방이 너무 잦은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4월 중순으로 통보된 순방일정을 접한 기자들은 곧바로 세월호 참사 1주기, 4월 16일을 떠올렸다. 구체적인 날짜가 나오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기자들은 참사 1주기 전에 다녀오거나, 추모 행사를 한 이후에 출발 할 것으로 예상했다. 시기가 중순으로 통보됐으니 4.16 전보다는 추모일정을 마친 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렇게 날짜가 하루 이틀 지났다. 청와대는 거의 매일 아침 일찍 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을 한다. 순방날짜를 묻는 질문이 계속 나왔다. 민경욱 대변인은 그때마다 "아직 정해진 것 없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4월 6일이 돼서도 똑같았다. 세월호 1주기 추모행사 일정을 묻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역시 "정해진 바 없다"였다.
또 사흘이 지났다. 4월 9일. 민경욱 대변인은 순방일정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또 다시 "조율하고 있고 머지않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추모 일정을 묻는 질문에는 "드릴 말씀이 없다"(죄송하다는 표현이 아니라 그냥 할 말이 없다는 뜻)라고 답했다. 기자들은 일정 통보가 늦어지는 만큼 세월호 추모 주간을 지나 순방을 떠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순방 일정이 공개된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청와대 기자실에 내려와 브리핑을 했다. 4월 16일 오후 출발해 콜롬비아, 페루, 칠레, 브라질 4개국을 순방한 뒤 27일 돌아오는 9박12일 동안의 일정이었다. 순방 일수나 내용은 특별한 게 없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그랬듯 정상외교 차원의 경제협력을 위한 방문이었다.
문제는 출발 날짜였다. 공교롭게도 세월호 1주기 당일 대통령이 출국한다는 건 수많은 억측을 낳을 법했다. 이를 의식한 민경욱 대변인은 “이번 순방 출국일은 세월호 1주기와 겹쳐 있다. 대통령은 1주기 행사 고려하고 있다. 일정은 확정되는 대로 여러분께 알려드리겠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왜 하필 그날 떠나야 하는가 물음표가 붙었다.
청와대는 상대 국가와 조율한 일정이라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맞는 말이다. 국빈방문을 한쪽의 사정으로만 결정지을 수 없다는 걸 기자들은 잘 알고 있었다. 또 1주기 행사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한 만큼 박 대통령이 어느 정도 민심을 수습하는 모습을 보이고 떠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격적으로 세월호 인양을 발표 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때부터 관심은 대통령이 어떤 추모행사를 치르고 떠날 것이냐에 집중됐다. 당일 정부에서 주관하는 추모행사는 없었다. 국민안전처가 ‘국민안전 다짐대회'라는 일종의 홍보행사를 여는 게 전부였다. 이 자리에는 박 대통령뿐 아니라 장관 등 정부고위 인사들도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들은 추모제를 지내는 안산 분향소에 대통령이 오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행선지는 바로 전날인 15일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기자들은 애가 탔다. 적어도 어디로 가는지는 알아야 미리 취재 인력을 배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정은 그날 결국 나오지 않았다. 16일 당일 새벽이 돼서야 대통령은 유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안산이 아니라 진도 팽목항으로 간다는 사실이 각 언론사에 통보됐다.
청와대는 당초 4월 18일 출국해 페루, 칠레, 브라질 등 남미 3개국을 순방할 예정이었으나 콜롬비아 대통령이 직접 서한을 보내 4월 15일에서 17일 사이 방문해달라고 요청을 해 부득이하게 16일에 출국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상황이 이쯤 되면 아무리 청와대의 설명을 들어도 대통령의 왜 하필 그날 떠나려고 하는 것인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에게는 아직 두 번의 4.16이 남았다
지금부터는 이제 모두가 다 알만한 이야기다. 콜롬비아는 지난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이 수교 50주년을 맞아 국빈 방문을 했던 곳이다. 박 대통령이 3년 만에 다시 찾았지만, 이번에는 국빈방문도 아닌, 그 보다 낮은 수준의 ‘공식 방문’이었다. 콜롬비아를 제외한 나머지 3개국은 ‘국빈방문’이었다. 박 대통령은 전임자가 3년 전에 다녀간 곳을 다시 ‘공식 방문’한 것이다.
과연 콜롬비아는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적 비극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국가 간에 긴급하게 처리해야 할 현안이 있는 게 아니라면 그 정도는 양해를 구할 수 있다는 게 상식적인 판단일 것이다. 청와대가 그런 이해를 구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또 콜롬비아 대통령이 먼저 공식방문을 요청한 것이 맞는지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순방 목표도 불분명했다. 청와대는 “우리의 경제 영역을 남미까지 넓히기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상투적인 표현일 뿐이다. 그럼 “아직 남미는 우리 경제의 영역이 아니라는 말인가?” 글쎄. 한국은 이미 콜롬비아뿐 아니라 남미 다수 국가들과 FTA를 체결한 상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원외교’를 앞세워 남미를 방문했던 것과 비교해 봐도 이번 순방은 명분도 떨어진다.
그렇다면 가지 말아야 할 순방을 떠난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많은 기업인들이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정부는 이를 지원해야 한다. 또 민간 차원을 넘어 선 국가 간의 경제 협력도 중요하다. 물론 해외에서 거주하는 한인들을 만나고 격려하는 것도 대통령의 주요한 역할이다. 문제는 명분과 실적이다.
국토교통부는 7월 6일 콜롬비아와 페루, 칠레, 브라질 등 4개국의 인프라·플랜트 수주 지원에 나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의 4월 남미 순방에 따른 성과라고 설명했다. 각 국가를 방문해 정상 간에 체결한 각종 MOU를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콜롬비아에서는 '철도협력 양해각서(MOU)'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수주 활동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다시 앞에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아직도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대통령은 정말 그날에 떠나야 했을까? 콜롬비아 방문을 순방 마지막 일정이었던 브라질 방문 이후로 잡을 수는 없었을까? 이도저도 안된다면 콜롬비아 대통령의 요청을 정중히 거절할 수는 없었을까? 왜 유가족도 한 명 없는 팽목항에 가서 바다를 배경으로 대국민담화문을 읽어야 했을까?
역대 대통령들의 해외 순방 횟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총 14회 순방을 통해 28개국 방문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3회 순방, 37개국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보다 더 많은 27회 순방에 55개국을 방문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독보적인 기록을 남겼다. 무려 49회에 걸쳐 84개국을 방문했다. 남미에는 G20회의를 겸해 두 번이나 순방을 했다.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14회 순방동안 28개국을 방문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슷한 순방기록을 남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록에는 못 미치지만 만만치 않은 횟수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임기 중 앞으로도 두 번의 4월 16일을 보내야 한다. 그날 박 대통령은 또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