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배(역사문제연구소 운영위원) 1)
내치의 실패를 덮으려는 박근혜대통령의 중남미 순방
박근혜대통령은 4월16일부터 27일 까지 중남미 순방을 다녀왔다. 무역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이번 대통령 순방과 함께한 경제사절단 참가로 인해 비즈니스 기회 창출로 이어져 4개국에서 총 76개의 우리 기업들이 497개사의 현지 기업인들과 750여건의 상담을 통해 7000억원에 달하는 실질적인 성과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중남미는 인구 6억명에 총 6조 달러에 달하는 GDP 규모를 갖고 있는데 정부는 이번 방문을 계기로 국가 기간망 건설, ICT, 보건, 의료 등 해당국에서 추구하는 혁신 및 현대화 성장전략에 초점을 맞추어 고부가가치 중심의 현지 맞춤형 상생 진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번 중남미 순방은 꽤 성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 방문은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되는 4월16일 출발하게 예정되어 있어서 출발 전부터 큰 논란이 일었으며 내치의 실패를 외교를 방패막이 삼아 면피하려 한다는 비난에 휩싸이기도 했었다.
이런 여론을 간과할 수 없었기에 예정에 없는 팽목항을 깜짝 방문 했으나 오히려 유족들의 격렬한 분노만 불러 일으켰을 뿐이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아베수상의 미국방문과 미일 동맹의 강화
박근혜 대통령이 중남미 순방을 마칠 즈음인 4월 26일 일본의 아베수상은 미국을 방문했으며 미국과 일본은 그 동안의 미온적 관계를 넘어서서 전략적 접근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외교적 행보를 가속했다.
아베수상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발효일인 4월 28일에 맞춰서 미국을 순방했는데 1952년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전범국 일본을 국제사회에 무임승차 시키는, 역사상 유례없는 조약이었다. 이번 오바마-아베 정상회담은 제2의 샌프란시스코 조약이라 불릴 만큼 미일간 밀월관계를 강화시킨 것이 도드라진다.
이번 미일 가이드라인 개정으로 일본 자위대는 미군이 가는 곳이라면 전 세계 어디든지 가는 것이 보장되었다. 주일미군과 함께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와 주변지역에 진출할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게다가 한국은 전시작전통제권이 없기 때문에 한반도 유사시에 일본이 미군 지원 명목으로 개입할 수 있게 되었고, 동중국해를 비롯하여 제3국의 분쟁에 한국이 연루될 가능성도 커졌다. 한국과 미국을 매개로 해서 일본과 함께 글로벌 동맹을 형성하게 되었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한미일 3국 군사력의 공동작전 가능성도 높아진 것이다.
미일간의 외교적 결속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인해 지난 5월1일 유승민 원내대표와 원유철 정책위 의장 등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는 국회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외교·안보 당정회의를 열고 정부의 외교 전략에 대한 강한 우려를 제기하게 된다. 이들은 박근혜정부의 외교전략 부재가 한국을 고립상태로 전락하게 만들고 있으며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꼴이 아니냐고 강하게 질타했으나 오히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한국이 고래를 흔드는 새우이고,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동시에 러브콜을 받는 것은 축복이라고 동문서답으로 맞섰다.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경쟁과 길 잃은 한국외교
지난 2008년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급격히 쇠락하고 있고 다시 일어선 중국은 성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중국은 광범위한 차원에서 패권싸움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그 주요무대는 중동,중남미,동북아시아등 전세계에 걸쳐있다.
중남미의 경우 최근 니카라과 운하문제를 둘러싸고 격화되고 있다.
“니카라과 정부는 태평양 연안 브리토에서 시작해 니카라과 호수를 가로질러 대서양 카리브해 연안 푼타 고르다까지 총 278km에 달하는 운하를 건설한다. 폭이 좁은 곳은 230m, 넓은 곳은 500m에 달하고 깊이는 27.6m에 이르는 대형 공사다.
시공을 맡은 업체는 중국 통신장비 제조업체 신웨이공사의 왕징 회장이 소유한 홍콩 니카라과운하개발(HKND)이다. HKND는 건설권과 함께 100년 운영권도 확보했다. 공사비는 500억 달러 안팎으로 추정되지만, 향후 더 많은 자금이 소요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HKND 측은 2020년 운영을 목표로 5년 내에 공사를 마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왕 회장은 기공식에서 “니카라과 운하는 인류 역사상 최대 프로젝트”라며 “전 세계 해상 물류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은 새 운하가 기존 파나마 운하에 상당한 위협이 되리라는 점. 니카라과 운하는 길이 77km, 깊이 21m인 파나마 운하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통과할 수 있는 선박의 총중량이 25만t에 달한다. 최대 7만9000t의 선박이 오가는 파마나 운하에 비해 강력한 경쟁력을 갖춘 셈이다“ 주간동아 2015.01.12 971호(p54~55)
파나마운하를 사실상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세계패권을 노리는 중국이 중남미를 교두보로 확보, 미국의 해상물류 패권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진출에 맞서서 동북아시아에서는 오바마 정부가 일본을 앞세워 중국의 안마당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Pivot to Asia)은 중국 견제를 위해 북한 위협을 강조하면서 일본을 중시하는 '일본 회귀정책'(Pivot to Japan)이다. 오바마는 아시아 회귀 정책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 일본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일과거사 문제에 일본의 편을 들기 시작한 것이다. 웬디 셔먼 국무차관의 '값싼 박수' 발언이나 에슐린 카터 국방장관이 '미래의 이익' 발언은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주변 강대국의 세력 재편기에 커다란 시련에 직면해 왔다. 구한말 쇄국과 개국의 대립 속에서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바있으며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찾아온 혼란기에는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터져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죽음과 파괴의 살육장이 된바 있다. 21세기 벽두의 대격변에 우리가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다면 더 큰 참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맹목적 친미외교노선은 재고되어야
이번에 아베수상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미국의 정치인과 언론들은 일제 시대 일본에 의해서 끌려간 종군위안부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의회에서 아베의 연설을 허용하지 말아야한다며 강하게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며 질타했었다.
그러나 막상 아베수상이 일본에 도착하자 백악관 남쪽 뜰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오하요 고자이마스(안녕하세요)"라고 일본말로 말하면서, "미국과 일본은 가장 가까운 동맹으로, 아베 방문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운을 뗐으며 한-일 과거사 갈등과 관련해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모두 발언에서 전날 아베 총리를 링컨기념관으로 안내한 것을 언급하면서, “링컨 대통령은 대규모 충돌 뒤에는 화해가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믿었다”고 알쏭달쏭한 말만 남겼을 뿐이다.
이에 더해 아베 일본 수상의 7박8일의 미국 방문과 관련, 벤 로즈(Ben Rhodes) 백악관 아시아 담당 국장은 “일본이 미국의 아시아 정책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 논평을 보고 1905년 러일전쟁 직후 미국과 일본이 체결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떠오르는 것은 지나친 우려인가?
미국,중국,일본,러시아가 각축하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할 정도로 혼돈에 휩싸여 있다. 이해관계만이 이들 강대국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외교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맹목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친미외교노선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안일하게 중남미 외교순방의 ‘성과’를 내세우는 것은 구체적인 외교 전략의 부재와 요동치는 현재 동아시아 정세를 감안할 때 결코 자랑스러워 할 일이 아니다. “외교라는 것은 형태를 바꾼 전쟁의 계속상태” 라고 했던 중국의 정치가 저우언라이 (1898년-1976)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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