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종연(주아르헨티나 대사)
중국의 약진
지금 중남미에서 중국이 뜨고 있다. 중남미가 미국의 뒷마당이 아닌지가 이미 오래다. 최근 3년 간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번갈아 중남미를 방문하였다. 이는 의례적인 방문이 아니다. 중국은 파이낸싱을 무기로 철도 및 터널, 원자력 및 수력발전소, 위성기지 등 대형인프라 사업을 입도선매하고 있다. 아울러 3조불이 넘는 외환보유고를 토대로 스왑협정, 인프라투자기금 설치 등 중남미의 은행역할도 하고 있다. 또 다른 제국주의 대두, 저가의 중국공산품 유입, 중국노동자 대거 진출 등 중국에 대한 중남미 사람들의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은 지금 이들에게 구세주다.
미국-쿠바관계 개선
2014년 12월 미-쿠바 수교 선언이 전격적으로 발표되었다. 이는 두 국가 간의 관계개선의 의미를 넘어서 미국의 대중남미 정책변화의 신호탄인 동시에 중남미지역 내 역학관계의 변화를 초래하는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미국이 2001년 9.11사태 발생이후 국가안보에 치중함에 따라 중남미지역은 그들의 관심대상에서 멀어졌다. 중남미에서도 반미 움직임이 강화되었고 급기야 좌파국가들은 그들의 잘못과 정책실패를 모두 미국에 뒤집어씌웠다. 아직 양국 간에는 대 쿠바 금수조치 해제, 관타나모 해군기지 반환 등 난제들이 있어 완전한 관계정상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나, 미-쿠바 화해로 인한 정세변화가 벌써 곳곳에서 감지된다. 중남미에서 미-중국 간 이해충돌도 예견된다.
중남미 좌파정부들의 변신
중남미 좌파정부들이 실리적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꼬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서방 금융기구들과의 협력확대에 적극적이다. 오르떼가 니카라과 대통령도 외국인투자를 바탕으로 연간 4-5%의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조차도 실용주의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브라질, 칠레 및 우루과이 사회민주주의 정부들도 점점 더 중도에 접근하고 있다. 쿠바의 대미국 접근과 녹록치 않은 국내외 경제환경들이 이들을 변화의 길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변화의 파고를 막지 못할 것이다.
태평양동맹의 부상 및 메르코수르의 위기
태평양동맹이 중남미의 희망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32개국이 서둘러서 옵서버로 가입했고, 언제부터인가 태평양동맹 4개 회원국은 세계 주요 VIP들의 단골 방문국이 되었다. 반면에 메르코수르는 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세동맹 수준에 머물러 있다. 회원국들은 동력을 상실한 채 피로증세가 역력하다. 급기야는 메르코수르 운영규칙을 개정하여 회원국 각자가 타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도록 허용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2개 대국과 우루과이 및 파라과이 2개 소국의 불균형 구조(asimetria)에다 정치적 색채가 강한 베네수엘라까지 들어와 이질성이 강화된 데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양국의 고질적인 경쟁의식이 메르코수르를 만성병자로 만들고 있다.
원자재가격의 하락
국제 원자재가격의 하락으로 중남미 경제가 침체국면에 처해 있다. 2014년 중남미는 1.1%의 저성장을 기록하였다. 1억6천만톤 곡물과 210만 배럴(일산)의 원유를 생산하는 브라질, 1억톤 곡물을 생산하는 아르헨티나 그리고 270만 배럴 원유를 생산하는 베네수엘라가 극저성장 또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2008-2011년 간 5-9% 성장의 호황기를 누린 바 있다. 한편, 호황기에 제공된 각종 복지서비스가 중남미국가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연간 150억불의 보조금을 투입해 국민들에게 저가의 휘발유를 공급해온 베네수엘라 정부가 지금 진퇴양난에 빠져있다. 원자재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중남미 경제가 지금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의 대중남미 외교과제
이와 같은 변화의 환경 하에서 우리의 대중남미 외교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각종 입찰에서 교역에서 중국과 경쟁하기가 버겁다. 쿠바와의 관계정상화도 진전시켜야한다. 변화를 선택한 중남미 좌파정부들에 대한 맞춤형 전략도 필요하다. 부상하는 태평양동맹과 차별화된 협력이 필요하고 문제아가 된 메르코수르에 대해서도 새로운 접근법이 강구되어야 한다. 세계 곡물창고인 브라질 및 아르헨티나와의 식량안보 협력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