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발파라이소
작성자 : 임두빈 작성일 : 2011-04-27 23:19:52 조회수 : 862
국가 : 칠레

[김남희의 남미 걷기 ‘올라, 아미고스’](1) 칠레의 항구도시 ‘발파라이소’

 
ㆍ키스와 사랑이 나를 부르는 ‘천국의 계단’

칠레의 대표적인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생가에서 내려다본 항구 도시 발파라이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멀리 수평선으로 이어지는 바다, 진분홍·샛노랑·연보라의 파스텔톤 지붕들이 정겹게 머리를 맞대고 있다. | 김남희씨 촬영



남북 길이 4270㎞. 사막에서 극지방까지를 품은,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 선거로 사회주의 정권을 열었으나 권총자살로 삶을 마감해야 했던 비운의 아옌데 대통령. 악명 높은 피노체트의 장기 군사독재로 비극의 현대사를 겪어야 했던 나라. 그리고 작년 가을, 지하 700m 갱도에서 광부 33인이 쓴 휴먼드라마로 전 세계에 그 이름을 다시 새긴 나라. 내게는 파블로 네루다와 이사벨 아옌데, 로베르토 볼라뇨의 글과 비올레타 파라와 빅토르 하라의 목소리, 몬테스 알파의 붉은 맛으로 기억되는 땅.
 

스물다섯 시간의 비행 끝에 나는 지금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공항에 서 있다. 입국 심사를 마치니 세관 검사가 기다리고 있다. 언제나처럼 신고할 물건이 없는 쪽으로 간다. 무작위로 검사를 하는 우리와 달리 이곳은 소지품 일체에 대해 엑스레이 스캔을 한다. 그 개성 없는 기계가 한 성격을 발휘할 줄이야. 세관원이 내 배낭을 열어 꼼꼼히 뒤지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기계의 오작동이라 믿었다. 내 소유물 중에 위험한 물건이라고는 나밖에 없으니까. 잠시 후, 가방 속에서 0.165㎏의 호두 한 봉지를 꺼내들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 세관원. ‘Acta de Denuncia y Citacion’이라고 쓰인, 내 범죄행위를 고발하는 파란 종이 한 장을 든 그가 어딘가로 나를 데려간다. 설마 오늘 밤을 산티아고의 유치장에서 보내게 되는 건 아니겠지. 벌금형과 구류형 중에 선택하라고 하면 어쩌지? 한푼이라도 아끼려면 역시 몸으로 때우는 편이 낫지 않을까? 여행자에서 범죄자로의 전락이라니.

백화점 사장 김주원에서 백령도 전투병으로 낙하한 김태평이란 사나이의 반전만큼이나 극적이다. 그런데 이곳 유치장에서는 갈비탕 대신 뭘 시켜 줄까? 스테이크? 연어 구이? 쇠창살이 쳐진 유치장에서 저녁을 먹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 있자니 어색한 발음으로 내 이름을 부른다. 그녀를 따라 들어가니 책상 위에 호두가 놓여 있다. 범죄행위의 명백한 증거품으로 비닐봉지에 담겨 번호까지 매겨진 채. 이 나라 국민 전체를 원인 모를 전염병으로 몰살시킬 수 있는, 재래종 호두를 멸종시켜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 있는 울트라 슈퍼 호두 폭탄. 그 폭탄을 들고 잠입하다 현장에서 사로잡힌 나는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신문에 응한다. “왜 호두가 가방에 담겨 있는 거죠?” “트레킹할 때 먹으라고 밴쿠버의 친구가 준 선물이에요.” “호두 같은 열매를 들여오는 건 불법이라는 거 몰랐나요?” “몰랐어요.” 4년 전, 스페인에서 물쓰듯 돈을 써가며 배운 내 스페인어는 어디로 다 사라졌을까.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진 나는 무뇌 인간. 낡은 마룻장처럼 삐그덕거리는 ‘발스페인어’로 덧붙인다. “칠레를 여행하려고 왔어요. 그러니까, 칠레에서 돈을 쓸 거예요. 많이, 아주 많이.”

비굴함 끝에 밀려든 억울한 기분에 막 따지고 싶어진다. 우리나라는 너희 농산물 때문에 농가가 다 망하게 생겼다고, 자동차 팔려고 식량 자급권을 포기하는 나라라고, 근데 겨우 호두 한 봉지 갖고 이렇게 매정하게 굴 수 있느냐고. 하지만 그런 말을 스페인어로 내뱉을 수준이 안 되니 입 다물고 있을 수밖에. 내 애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나를 고소할 서류들이 하나씩 쌓여간다. ‘Declaracion’. 그 다음에는 ‘Acta de destruccion’. 그리고 ‘Acta de intercepcion’. 뜻은 전혀 모르겠지만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 전해지는 단어들이다. 한 장씩 들이밀더니 “피르마(사인)!”하란다. 이걸 사인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설마 내 죄를 인정하고 죗값을 달게 받겠다는, 그러니까 징역 3년 이하 집행유예 1년 뭐 이런 걸 받아들이겠다는 사인?

얌전히 손을 모아 쥐고 최대한 가련하고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본다. 어딘가 절박해 보이고, 궁핍해 보이는 내 외모는 늘 어려운 순간에 결정적 도움을 끌어내곤 했으니 믿어보는 수밖에. 눈을 깜빡거려 보지만 그녀의 표정은 변화가 없다. 결국 떨리는 손으로 사인을 한다. 마침내, 판결문을 내미는 그녀. 도무지 해독할 수 없는 스페인어에 눈길을 주고 있자니, 그녀가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킨다. 영어 해설판이다. “벌금형에 처해야 하는 중대한 범죄행위이나 초범임을 감안해 관대히 사면한다”는 내용. 역시 사람을 감화시키는 건 처벌이 아니라 용서임을 온몸으로 깨닫는 나. 고마움을 숨기지 못한 목소리로 “그라시아스(감사합니다)”를 연발한 후 사무실을 나선다. 도망치듯 뛰어서. 마음을 바꾼 그녀가 칠레 정부의 재정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벌금형을 때릴까봐.

호되게 입국 신고식을 치른 후 시내에 짐을 푼 나는 바로 지도를 펴들고 나선다. 낯선 도시에 도착하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 그 도시의 신에게 인사를 드리는 일이다. 다행히 이 도시의 신은 나도 익히 알고 있는 분이다. 알마광장의 대성당에서 무릎을 꿇고 잠시 기도를 올린다. 여기까지 오게 하심을 감사드린다고, 열린 마음으로 내내 깨어있게 해달라고. 성당을 나온 내가 버스를 타고 찾아가는 곳은 한 남자의 집이다. 스무 살에 쓴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로 세계의 청춘을 사로잡았던 남자.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지만 시가 나를 찾아왔다고, 시인이 될 수밖에 없던 운명을 기가 막히게 표현한 파블로 네루다 할아버지의 생가. 칠레를 대표하는 시인인 그의 생가는 모두 세 곳이다. 태평양을 바라보는 이슬라 네그라에 한 채, 산티아고 시내에 한 채, 그리고 지금 내가 찾아가는 항구 도시 발파라이소에 한 곳이 있다.

‘천국의 계단’을 뜻하는 발파라이소는 산티아고에서 북서쪽으로 190㎞ 떨어진 항구도시다. 이곳은 미국과 유럽을 드나드는 배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며 19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유럽에서 몰려든 이민자들이 교회나 학교, 집 등을 고유의 방식으로 건설한 19세기 후반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도시의 입구에 들어선 순간, 나는 넋을 잃고 만다. 걱정·근심이라고는 없는 천국의 화가들을 불러모아 마을을 꾸미게 한 걸까. 온 동네가 연보라, 샛노랑, 진분홍, 초록 등 밝고 화사한 파스텔톤으로 가득하다. 느긋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절로 배어난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멀리 수평선으로 이어지는 바다는 완벽한 배경이다. 너무 예뻐서 비현실적인 이 거리에서 악단은 부에나비스타소셜 클럽의 ‘친친’을 연주하고 있다.
 

네루다 생가의 벽화. 평생 바다와 배를 연모했던 시인의 숨결이 벽화에 묻어 있다.

정신없이 골목길을 탐험하던 나는 마침내 이곳에 있는 네루다의 생가, 지금은 박물관이 된 곳을 찾아간다. 열다섯에 바다를 처음 본 이후 한평생 바다와 배에 대한 연모를 품어온 그답게 집 안의 어디에서도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인이자 정치가, 공산주의자였으며, 가장 서정적인 연애시에서 가장 뜨거운 서사시까지 자유롭게 오간 네루다. 연애시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에 대해 네루다는 이렇게 썼다. ‘…그 무렵 나는 의기소침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떠돌이 생활에 자포자기해서, 알파벳을 갉아먹고 있었는데 말이지,/ …그러고 나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보려고 광산의 갱 속으로 다녔지./ 그리고 내가 나왔을 때, 내 손은 쓰레기와 슬픔으로 얼룩져 있었고….’ 광산으로 간 네루다는 가장 험한 일을 하면서도 가장 가난하던 광부들과 함께 싸우고, 광부들의 지지로 상원의원이 되었다.

산 호세 구리 광산의 갱도에 69일간 갇혀 있던 광부들이 네루다의 시를 읽으며 버틴 밤을 떠올려본다. 그들이 읊은 시가 혹시 ‘남쪽에서의 굶주림’은 아니었을까. ‘나는 본다 로타의 탄광에서 흐느껴 우는 걸,/ 땅속 깊은 데 참담한 갱도에서 구멍을 뚫는/ 지쳐버린 칠레인의 주름진 그림자를, 죽는 걸,/ 사는 걸, 화석화한 광재(鑛滓) 속에서 태어나 열심히 일하는 걸, 마치 세계가/ 그렇게 오고 또 그렇게 떠날 것처럼/ 검은 먼지 속에, 불꽃 속에 무너져 있는 걸….’ 억압받고 소외받는 이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전했던 시인은 마지막까지 그들을 잊지 않았다. 이슬라 네그라의 별장을 광산 노동조합에 남겼으니.

네루다의 서재 벽에 걸린 옛 지도를 들여다본다. 내가 걸어가게 될 여정을 짚어본다. 이 넓은 대륙의 수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을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듣기 위해 지구의 남쪽 끝까지 내려갈 것이다. 오늘 내 친구는 카카오톡으로 문자를 보내왔다. “외롭지만 한번 지나갈 인생, 뭐가 두렵겠어. 산들산들 바람에 미친년 치맛자락 맹키로 질정 없이 나부끼다 흐드러지게 찢어질지언정, 누나, 많이 사랑하고, 울고, 또 건강하게 한걸음 한걸음 해. 언제나 멀리서 지켜봐줄게.” 다시 네루다의 시를 떠올려본다. ‘나는 거리로 나가련다./ 나는 삶 자체에서/ 삶을 배웠고,/ 단 한번의 키스에서 사랑을 배웠으며/ 사람들과 함께 싸우고/ 그들의 말을 내 노래 속에서 말하며/ 그들과 더불어 산 거 말고는/ 누구한테 어떤 것도 가르칠 수 없었다.’ (네루다 시 번역 정현종 시인)

나는 지금 거리에 서 있다. 키스와 사랑이 나를 부르고 있는 거리로, 막 한 발을 떼었다.

※ 27일부터 매주 수요일 ‘김남희의 남미걷기 - 올라, 아미고스’를 연재합니다. 김남희씨는 세계 여러 지역을 걸어다녔고, 감각적이면서도 웅숭깊은 여행기로 잘 알려진 도보여행기 전문작가입니다. 이번에는 칠레를 비롯한 남미의 오지를 걸어다니면서 그곳 자연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향신문에 전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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