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동네 속으로” 미션은 신자유주의 체제를 뒤집는 혁명이다
작성자 : 안태환 작성일 : 2013-11-20 18:07:31 조회수 : 614
국가 : 베네수엘라 언어 : 한국어 자료 : 정치

“동네 속으로” 미션은 신자유주의 체제를 뒤집는 혁명이다 (2013.9.3)

 

 

 

 

안태환/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HK교수

 

 

 

  베네수엘라의 우파 정치세력과 미디어는 차베스와 마두로 정부의 정책에 대해 집요하게 공격과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도 정책의 성공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을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동네 속으로” 공공의료 프로젝트이다. 전국적으로 7천 곳의 일차 진료소가 있고 500곳의 이차 진단 센터가 있다(19). 책의 전반적 내용은 원서의 제목이 [혁명적 의사들]로 되어있듯이 체제를 완전히 바꾼 혁명적 상황에서나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과연 무엇을 혁명하였나? 전 세계 어느 나라나 현재 신자유주의에 포획되어있다. 미국, 스페인 등에서 1%대 99%의 양극화를 반대하는 젊은이들의 시위가 열렸어도 그 체제는 바뀌지 않고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의 핵심 전략은 주거, 교육, 교통, 의료, 에너지, 수도 등의 사유화이다. 그리고 대중의 철저한 배제와 억압이다. 데 소우사 산토스는 이를 ‘사회적 파시즘’의 출현으로 해석한다. 차베스 정부는 2003년부터 교육과 의료의 공공성 정책을 추진했다. 단순히 공공성 정책을 추진한 게 아니라 철저하게 베네수엘라 사회에서 배제된 “가난한 대중”의 억압을 해방하는 방향으로 실천하였다. 즉 신자유주의 체제의 전면적 뒤집음을 통해 바로 ‘민주주의’를 강화시킨 것이다.

  그러나 차베스가 등장하기 전의 베네수엘라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양당체제를 가진 나라로 인식되었다. 다시 말해 중도좌파와 중도우파의 양당이 평화적으로 정권교체를 하며 거시 경제도 안정되었고 사회적으로도 노조와 노동권의 인정과 함께 일반 시민들의 삶의 질도 상대적으로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보다 높았다. 그런데 문제는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이 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다는데 있다. 베네수엘라는 전형적인 ‘석유국가’로서 80년대 중반이후 원유가의 하락과 외채문제로 경제적으로 위기를 겪게 된다. 이 같은 국면에서 ‘일반 시민’의 범주에서 배제되고 소외되는 가난한 대중 즉, 랑시에르가 이야기한 “몫 없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교육, 의료등 사회서비스에서 전통적으로 배제되어왔다. 그 배제가 신자유주의가 극심해진 90년대에 들어 더욱 심해졌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차베스가 등장하기 직전에 경제위기와 사회위기는 아주 컸다. 예를 들어, 집권이 시작된 1999년에 실업율은 15.4%, 비공식 노동은 51.7%, 빈곤율은 56%였다. 그리고 1996-1997년에 GDP대비 사회정책 예산 지출은 8.4%였다. 그러던 것이 차베스 체제의 2006년에 13.6%로 올랐다(117). 지니계수도 1999년 0.49에서 2010년 0.39로 하락했다. 미국의 경우 1980년 0.403에서 2005년 0.469로 높아졌다(116).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들 배제된 대중이 즉각적으로 ‘봉기’한다는 점이다. 카라카스 시내와 외곽에서 격렬하게 시위를 하며 도로점거와 슈퍼마켓 등을 약탈했고 유혈희생이 매우 컸다. “카라카소”로 불리는 거의 폭동수준의 소요였다. 도화선은 흥미롭게도 최근 브라질 시위에서와 같이 휘발유 값 인상에 따른 버스요금 인상에 대한 항의였다. 아무리 일상적 삶이 어려워도 개인의 경쟁과 성과를 중시하는 자유주의 체제에 순응적인 대중은 참고 지내거나 자살을 택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 베네수엘라 대중은 뻔뻔할 정도로 “인간다운 삶”의 요구를 ‘봉기’를 통해 한 것이다.

  차베스가 1998년 선거에서 승리하기 전에 진보적, 급진적이라고 평가받은 라파엘 깔데라 좌파연합정권은 1997년에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위해 기존의 사회 보장청을 해체할 정도로 ‘공공성’을 멀리하였다. 차베스는 집권 후 이런 흐름을 뒤집은 것이다. 물론 쉽게 된 것이 아니다. 차베스는 1999년 신자유주의적 흐름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주의적 헌법을 제정한다. 이외에 차베스 체제를 굳히기 위한 전략으로 2001년 11월 ‘탄화 수소법’을 비롯한 49개의 수권법(Ley Habilitante)을 대통령 입법으로 통과시킨다. 전임 정부에서 점진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취하고 있던 석유공사를 재 국유화시키며 자본주의 체제를 과감하게 변혁시킨 조치였다(Lopez Maya 2005). 이에 대해 반 차베스 진영은 자유민주주의를 깨트리는 독재자로 차베스를 격렬하게 비난하게 된다. 이는 2002년의 반차베스 진영의 쿠데타 시도와 ‘자본’측의 조직적 사보타지의 저항으로 이어진다. 이런 격렬한 반발과 저항을 뚫은 뒤에야 2003년부터 “교육과 의료의 공공성”을 지키려는 실험이 출현하게 된다. 다른 나라들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실험임을 인식해야 한다.

  올해 7월 26일은 카스트로에 의한 몬카다 병영 습격사건 60주년 되는 날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적 인물은 체 게바라이다. 베네수엘라의 어느 텔레비전 프로의 진행자의 책상위에는 볼리바르, 게바라, 마르크스의 두상이 순서대로 크기가 점점 작아지게 놓여있다. 쿠바 의료체계에 대한 설명이 책의 앞부분에 나오게 된 것은 베네수엘라의 “동네 속으로” 미션의 주체가 되는 의사들이 쿠바 의사들이기 때문이다. 2004년에서 2010년 사이 “동네 속으로” 미션에서 활동한 의사를 포함한 쿠바 의료 인력은 약 2만 명에 달한다(19). 쿠바는 90년대 초 소련 붕괴이후 더욱 가혹해진 미국의 경제제재 하에서 도시 유기농업, 개방적 관광정책과 함께 “공동체 중심적 무상 예방의학 시스템”을 국제화시켰다. 그 대표적 기관이 쿠바의 아바나에 1998년에 설립된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이다. 2009년 현재 수 천 명의 라틴아메리카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28). 베네수엘라를 비롯하여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농촌과 도시빈민 지역의 학생들 및 미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의 학생들을 초청하여 무료로 의학교육을 시킨 뒤에 자신의 나라에 돌아가서 고향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진료에 나서게 한다. 이를 본받아 2006년에 베네수엘라에서도 여러 농촌 지역에 6년제 “지역통합의학교”(Medicina Integral Comunitaria)를 설립하여 가난한 농촌 학생을 의사로 교육시키고 있다. 농촌과 빈민지역에 십 만 명의 의사를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교수들은 “동네 속으로” 미션의 쿠바 의사들로서 약 6천명이다. 2011년 현재 약 3만 명이 교육받고 있고 2011년 12월 첫 번째 졸업생 약 8천2백 명이 의사가 된다. 쿠바와 달리 베네수엘라는 헌법에서도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자본주의 시스템이 주도적으로 작동하는 국가에서 쿠바와 같은 무상의 공공의료를 추진할 때 이를 자원할 베네수엘라 의사는 한 명도 없었다. 이에 대한 대안은 단기적으로 쿠바의사를 초청하는 것이었고 중장기 대책은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에 유학 보내거나 “지역 통합의학교”에 가난한 농촌과 도시빈민 출신학생들을 입학시켜 ‘새로운 주체’의 의사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일반 개업 의사들은 “지역 통합의학교”에서 배출하는 의사들을 무시하고 싫어한다. 의사로서의 전문적 수준과 자질을 의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11년 베네수엘라의 한 인터넷 매체의 보도에 의하면 국립대학인 센트랄대학교(UCV) 의대 부속 종합병원인 바르가스 병원의 원장은 “지역 통합의학교”의 학생들이 충분히 의사로서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하는 반면 동 병원의 어느 위원회의 평가로는 위 학교 학생의 약 80%는 의사로서의 전문적 실력에 모자란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동네 속으로> 미션 못지않게 <미션 수크레>가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나라에서 가난한 학생들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미션 수크레>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료로 대학교육을 시키고 있다. 특히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과학, 컴퓨터 공학, 농생태학, 간호학, 의료 기술, 재활 치료 등을 가르친다(218-219). 교육과 연구 자체를 지역주민과 일체가 되어 실천한다. 차베스 혁명의 핵심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베네수엘라 의료시스템이 무상인 것은 아니다. 우리와 같은 사적 의료 시스템이 전체적으로 작동하고 있으면서 도시 빈민과 농민을 위해 무상 진료를 한다. 여기서 ‘농민’이라고 해서 우리나라를 연상하면 안 된다. 라틴아메리카는 식민지상태에서 독립한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제대로 “농지개혁”이 안 되어 있고 대토지 소유자들의 힘이 매우 강하다. 시골 농민들(깜뻬시노)은 대부분 가난하다. 특히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비해 도시화 율이 매우 높은 베네수엘라의 농민들은 더욱 가난하다. 필자는 베네수엘라를 몇 번 방문했고 멕시코와 콜롬비아에서 장기 체류한 경험이 있다. 이들 라틴아메리카 사회의 주거환경의 특징은 부자동네와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가 확연히 구분된다는 점이다.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평생 동안 부자동네를 한 번도 안 가보는 가난한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중년이상이 된 가난한 사람들 중 치아가 빠져 듬성듬성 나있는 사람들을 흔히 보게 된다.

  여기서 ‘동네’를 주목해야 한다. 라틴아메리카는 가난한 동네안의 주민들의 일상생활의 공동체적 연대가 매우 강하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의 2001년 경제위기와 대량실업의 혼란 속에서도 이 ‘동네’의 연대를 통해 정부에 대해 시위와 요구를 하며 스스로 돕기도 했다. 그러므로 베네수엘라의 “동네 속으로” 미션도 이런 공동체적 연대가 강한 문화적 토양이 있었기에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음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 이상의 중요한 사회학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예를 들어, 가난한 동네 안에서도 가장 가난한 누군가가 있으면 이들을 먼저 진료소(암블라또리오)에 안내하여 진료 받게 하고 그 자녀들을 다양한 교육 미션에서 교육받게 하고 이들의 어려움을 “주민평의회”에서 문제제기하고 그들의 생업을 위해 동네사람들과 “조합운동”도 하게 하는 방식이다. 매우 중층적이고 분절적이지 않다. 이런 과정에서 이들 배제된 가난한 대중이 스스로 집단적 (사회적)주체로 출현하고 있다. 작은 공동체인 동네 차원의 이런 변화의 중심에 특히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155). 이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를 급진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차베스 정부가 설립한 “지역 통합의학교”의 경우에도, 단순히 진료와 교육만이 아니라 지역사회 주민교육, 예방을 위한 사회활동 등도 펼치게 된다(19). 다시 말해 쿠바와 베네수엘라의 이런 실천은 ‘건강’을 단순히 신체의 질병치료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신체, 심리, 사회, 정신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의미에서의 개인의 건강한 생활에 대해”(325)고려하고 있음을 스티브는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의학교육을 시킬 때에도 아주 포괄적이고 폭넓은 사회학적, 인문학적 소양을 가르치고 있다. 왜냐하면 정책입안자, 의사, 공동체 활동가, 주민 사이의 창의적 교감과 건강에 대한 집단적 문제 해결 즉, 정치, 경제, 사회적 대안과 ‘건강권’을 중시하는 ‘사회 의학’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 의학’의 전통은 체 게바라의 조국인 아르헨티나와 에콰도르, 칠레 등에서 1970년대 초까지 매우 강했다. 칠레에서 20세기 초부터 시작되었다. ‘피노체트 이후’의 칠레와 신자유주의에 포획된 멕시코와는 아주 다른 맥락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최근의 베네수엘라의 변혁적 실험에만 주목하기 쉬운데 라틴아메리카 사회가 오래전부터 가져왔던 사회적 포용의 전통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1999년의 베네수엘라의 신헌법 83조와 84조에서 건강이 ‘사회적 권리’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동네 속으로” 미션이 2003년부터 시작되었지만 집권 초부터 잠재적으로 기획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차베스 혁명의 핵심 동력은 인종, 젠더, 계급 등을 포함하여 모든 ‘사회관계’의 위계서열과 경계를 허물려는 것이다. 스티브는 이런 문제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이런)보건 의료 분야에서 얻은 교훈은 다른 사회 서비스 영역으로도 충분히 확장될 수 있다. 그러려면 모든 분야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인간적인 관계로 바꾸고 이론과 실천사이에 놓여있는 장벽을 걷어내야 한다. 평등한 사회에서 노동하게 되는 날 손노동과 지식 노동을 구분하는 불필요한 장벽은 사라질 것이다.”(340). 매우 중요한 언급이라고 본다. 프랑스의 정치철학자인 쟈크 랑시에르의 문제의식과 비슷한 것 같다. 스티브는 손노동과 지식노동을 연결시켜주는 미션 수크레(빈곤층을 위한 대학교육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지적하며 젊은이들에 대한 농생태학을 가르칠 것을 지적하는데 이미 베네수엘라 정부는 “비야 깜페시나”와 함께 2006년부터 “프레이리 라틴아메리카 생태농업대학”을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빈곤한 농촌 학생들에게 무료로 인문학적 농생태학을 가르치고 있다. 20세기 현실 사회주의가 관료주의와 자유의 부재로 실패했음을 스티브는 지적하고 있다(324). 차베스 혁명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와 모두의 행복을 중시하는 사회주의의 경계에 있다.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책의 아쉬운 점을 지적하자면 빈곤층을 위한 무상의료의 공급자의 시각에서 그 가치와 의미를 주로 짚었기 때문에 수요자 또는 수혜자의 의견 분석이 조금 부족한 점이다. 당연히 수혜자의 만족한 답변이 나오겠지만 그런 분석을 통해 의료혁명의 ‘사회적 충격’을 강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런 충격을 통한 수혜자 대중의 개인적, 사회적 삶의 태도의 변화가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책의 저자인 스티브는 목수, 디자이너, 여행가라는 직업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삶 자체가 생태적 비전을 육화시키고 있는 자유인이라는 점이 글에서도 물씬 묻어나온다. 그러므로 일반 독자들이 쉽게, 편하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차베스 혁명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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