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마까빠 건립 254주년 축제를 돌아보며
작성자 : 김영철 작성일 : 2012-02-05 17:54:24 조회수 : 635
국가 : 브라질

마까빠는 브라질에서 유일하게 적도가 도시를 관통하는 곳이다. 남과 북으로 나누어지는 도시 구분도 거창하게 적도가 기준이 된다. 적도가 지나가는 도시라고 하니 규모가 엄청나게 클 것 같은데, 아마빠(Amapa)주의 주도라고 하기에는 도사 외소해보인다. 아마존강 하구 북부에 위치해 있어 마까빠인(Macapaense)들의 삶은 아마존강과 같이하고 있다. 빠라(Para)주의 벨렝(Belem)과는 아마존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데 마라조(Marajo)섬이 가로막고 있다. 우리의 인식으로는 강을 마주하고 있으니 거리가 얼마되지 않을 것 같지만, 비행기로 40분이 걸릴 만큼 멀다.

마까빠가 살아온 길

마까빠라는 말은 뚜삐어에서 왔는 'Macpada)가 변형된 것이다. 이 지역에는 바까바(Bacaba)라고 하는 팜나무가 많이 자생하던 곳이었는데, 마까빠라는 말도 이런 뜻에서 비롯되었다. 바까바를 수확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바까바데이라(Bacabadeira)라고 마까빠인들을 부르기도 한다. 마까빠라고 불리기 전에서는 이고에 도착한 스페인인들이 1544년에 안델란따도 데 누에바 안달루시아(Adelantado de Nueva Andalucía)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아마 스페인인들이 이름붙인 시기부터 시작한다면, 도시가 만들어진지 468년이 되지만, 공식적으로 도시 건립으로 인정되지 않았는데, 공식적인 도시 건립은 1758년 2월 4일 포르투갈인 세바스찌앙 베이가 까브라우(Sebastião Veiga Cabral)가 정착하여 상주제 지 마까빠(São José de Macapá)를 건립하고 1784년에 상주제 요새를 건축하기 시작하여 18년 만에 완공했다. 현재 상주제 요새는 마까빠 시를 상징하는 유적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254주년 기념식

오늘 마까바 254주년 기념식에 참가해서 하루 종일 행사를 따라 다녔다. 아마 열대지방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공식적인 행사가 아침 8시에 시작되었다. 마까빠의 주요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규모가 크지 않아 소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행사는 각 종교 단체의 대표들이 축하메세지를 전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시장과 부시장의 인사말로 이어져 찬송으로 마무리되었다. 종교단체에서는 가톨릭, 복음주의 교회, 아프리카 종교 등이 참가했다. 다들 자신들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해서 마까빠의 미래를 위한 축복을 전하는 것으로 인사말을 마무리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로살 수여식, 정확하게 세지는 않았지만 약 50명이 상을 받는 것 같았다. 상을 많이 주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면 그 가치가 상실해 큰 의미가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느낄 수 있었는데 약 200명 정도가 참가한 행사에서 50명이 상을 받는 장면은 어딘가 정치적 냄새가 났다. 그렇게 공식적인 행사는 아침에 쏘아올린 폭축으로 마무리되었다.

오전 10시부터는 플로리아누 뻬이소뚜(Ffloniano Peixto) 광장에 마련된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로 이어졌다. 작은 연못에 오리배를 띄워놓고 곳곳에 풍선 놀이기구들을 설치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어린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연이 진행중이었다. 지역 텔레비전을 통해 오늘의 행사들을 광고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는 말을 믿고 갔으나 규모는 역시 크지 않았다. 남동부주에 있는 도시들과 비교하면 작은 도시에 불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형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밤에 이어질 공연을 기다렸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브라질의 축제는 어떤 축제를 가던 흥겨움과 즐거움이 함께 하고 누구나가 흥청거리는 그런 모습이다.

저녁 7시에 찾아간 꼬꾸 광장(Praca de Coco)에는 이제 막 공연 준비로 한참이었다. 나도 꼬꾸 가게에 자리잡고 꼬꾸를 마시고, 땅도 사먹고 Festa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피에로의 몸짓과 말에 따라 자지르지고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잡고 축제를 즐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지역축제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왔다. 항상 축제는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법,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기도로 축제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사회자들이 '여러분 오른손을 드세요'하고 곧 기도문을 외쳐된다. 그리고 다시 첫번째, 두번째 초대 가수들이 모두 찬송가를 부른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브라질에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다시 주위를 살펴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찬송에 심취해 차분한 가운데 노래를 따라 하고 있었다. 브라질은 가톨릭 국가로, '많은 축제, 적은 미사'라고 할 만큼 축제가 중심인데, 여기는 아니다. 이렇게 보니 다시 마까빠의 역사를 생각하게 된다. 마까빠는 1950,60년대 빠라주, 특히 벨렝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많았다. 벨렝은 브라질에서 복음주의가 가장 빨리 들어온 곳이었고, 이들이 대부분 이주한 곳이 마까빠였다. 그래서 복음주의가 많은 것은 이해되지만, 브라질 전통과 다른 축제를 즐긴다는 것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공연장 주위에 있는 가게들을 돌아보니,, 이럴 수가,, 꼬꾸 가게가 절반을 차지하고, 길 건너 편에는 감자, 마디오까 튀김 노점들 뿐이다. 아주 멀리에 식당에서 맥주를 팔고 있는 정도였다. 대부분의 축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내게는 당황스러운 것이었지만 마까빠엔시들은 이 축제를 아주 즐겁게 즐기고 있었다. 때문에 브라질에서 가장 안전한 축제는 만들어졌지만, 가장 브라질답지 않은 축제가 되었다.

마까빠에서 건립 254주년 기념식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좋은 기회였지만, 조금은 어색함이 남는 순간이었다.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까빠는 브라질의 다른 지역과 고속도로가 연결되어 있지 않는 유일한 주도이다.  아마존강을 통해 많은 소통하고 있지만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마까빠가 어떤 자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배들은 그냥 지나쳐 가는 곳이었을 것이다. 육로로는 프랑스령 가이나로 가는 것이 더 편리하다. 이처럼 브라질과 분리되어 성장하면서 축제문화를 잃은 것인지, 삶의 고단함을 종교에 의존해서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가 변화된 축제 문화를 만든 것인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마까빠, 시차적응에 실패한 새벽에,           김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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