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라키스 작성일 : 2026-06-16 11:55:07 조회수 : 12
국가 : 중남미
출처 : 연합뉴스
발행일 : 2026.06.16.
원문링크 : https://www.yna.co.kr/view/AKR20260615002800371?section=international/centralsouth-america
원문요약 : 2000년 마흔다섯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2002년 뷰티 유통 사업을 시작한 뒤 20여 년 만에 15개 매장과 700명의 직원을 거느린 거대 유통기업을 키워냈다.

미국서 15개 매장·700명 직원 거느린 K-뷰티 유통 기업 일궈

마흔다섯에 도전한 아메리칸드림…실패 끝에 성공 신화

"빨리 보다 정확히, 천천히…미리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세요"

이미지 확대미국 K-뷰티 산업 대부 박형권 뷰티마스터 회장
미국 K-뷰티 산업 대부 박형권 뷰티마스터 회장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지난 7일 서울 광진구 더 클래식 500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박형권 뷰티마스터 회장. 2026. 6. 7. phyeonsoo@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미국을 넘어 캐나다와 중남미를 잇는 K-뷰티 산업 유통 허브를 구축하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를 거점으로 K-뷰티 유통 왕국을 일군 박형권(71) 뷰티마스터 회장은 최근 신제품 출시 미팅 등 유통망 확대를 위해 방한해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며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했다.

2000년 마흔다섯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2002년 뷰티 유통 사업을 시작한 뒤 20여 년 만에 15개 매장과 700명의 직원을 거느린 거대 유통기업을 키워냈다.

애틀랜타 매장의 경우 6천611㎡(약 2천 평) 규모로 25만 종의 헤어·미용 제품을 갖춘 초대형 유통 공간이다.

성공 신화의 출발점은 중학교 2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서 살던 친척 할아버지가 귀국해 "미국에서 트럭 운전을 하면 한 달에 1만 달러를 벌 수 있다"고 건넨 한마디가 어린 박 회장의 마음에 불씨를 댕겼다.

10대부터 품어온 미국행 도전은 그로부터 30년이 흐르고 나서야 현실이 됐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려온 아메리칸드림은 녹록지 않았다.

"자신만만하게 미국에 왔는데 와 보니 언어도 안 통하고 참 힘들었죠. 제가 할 수 있는 비즈니스라곤 한국 사람 상대하는 것밖에 없어서 해보지 않은 음식 배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경험 없는 배달업은 8개월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실패 뒤 새 활로를 모색하던 박 회장의 눈에 미용 유통업이 들어왔다. "70~80%가 한인들이 장악한 비즈니스더라고요. 그래서 뛰어들면 굶어 죽진 않겠다고 생각했죠."

이미지 확대지난 2월 설특집 KBS '글로벌 한인기행 김영철이 간다'에 소개된 박형권 회장
지난 2월 설특집 KBS '글로벌 한인기행 김영철이 간다'에 소개된 박형권 회장

[ KBS 1TV 유튜브 화면 캡처]

2002년 가발 판매점으로 시작한 첫 달 매출은 한화로 약 2천만 원. 그러다 불과 2년 만에 월 매출 2억 원, 이듬해에는 4억 원으로 뛰어올랐다.

가파른 성장의 뒷면에는 혹독한 자기와의 싸움이 있었다. "담배도 골초였고 술도 많이 마셨지만, 일절 끊고 10년간 바깥 활동을 안 하고 오직 집과 가게만 오갔어요".

10년간 지각 한번 없이 사업에만 매달렸다. 박 회장은 그 시절을 회고하며 "가족들의 자유를 뺏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전 세계가 멈춰 선 코로나19 팬데믹 때도 박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당국을 설득해 "미용용품 매장은 일상에 꼭 필요한 곳"임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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