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라키스 작성일 : 2019-09-11 08:04:09 조회수 : 467
국가 : 칠레 언어 : 한국어 자료 : 사회
출처 : 매경프리미엄
발행일 : 2019.09.10
원문링크 :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19/09/26592/

[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237]
 

8일(현지시간) 일요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시민들이 피노체트 독재정권 시절 고문으로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들의 신원이 걸린 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9월 11일을 앞둔 일요일이면 칠레 시민단체들은 매년 이런 행진을 한다고 한다. /출처=AFP
▲ 8일(현지시간) 일요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시민들이 피노체트 독재정권 시절 고문으로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들의 신원이 걸린 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9월 11일을 앞둔 일요일이면 칠레 시민단체들은 매년 이런 행진을 한다고 한다. /출처=AFP

전 세계가 기억하는 '끔찍한 9월 11일…'. 2001년 미국 뉴욕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빌딩과 워싱턴 국방부 건물에 대폭발테러가 일어난 날. 9·11은 미국과 이슬람 극단 무장단체 알카에다(Al-Qaeda)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9·11을 꺼낸 건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 참사 때문만은 아니다. 같은 미국과 같은 아메리카 대륙인 칠레도 9·11은 무자비한 악몽의 날이다. 칠레는 자원 부국이라는 점에서는 우리나라와 다르지만 군부 쿠데타와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닮은꼴 나라로 자주 꼽힌다.
 

"과거를 잊은 사람들에게 미래는 없다(Un pueblo sin memoria es un pueblo sin futuro)"칠레 수도 산티아고에 있는 국립경기장 `존엄의 관람석`에 적혀진 말. /출처=칠레24horas
▲ "과거를 잊은 사람들에게 미래는 없다(Un pueblo sin memoria es un pueblo sin futuro)"칠레 수도 산티아고에 있는 국립경기장 '존엄의 관람석'에 적혀진 말. /출처=칠레24horas

EFE통신에 따르면 8일(현지시간) 일요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시민들 수천 명이 시민 묘지를 향해 행진을 벌였다. 9월 11일을 앞둔 일요일이면 칠레 시민단체들은 매년 이런 행진을 한다고 한다.

올해 9월 11일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Ugarte·1915~2006년) 독재정권 쿠데타가 일어난 지 46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 육군참모총장 피노체트가 이끄는 군대가 당시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1908~1973년) 대통령을 9월 11일 공격했다. 피노체트가 이끄는 반란군은 대통령궁과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반란군을 진압하려다 역부족에 놓인 공군 장성들이 아옌데에게 망명하라고 권했다. 총을 든 아옌데는 끝까지 남아 싸우다 자결했다. 총은 쿠바 혁명을 이끌던 피델 카스트로가 선물한 AK-47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칠레 군사평의회를 만들고 스스로가 의장이 된 피노체트는 군사독재 시대를 열었다. 피노체트 군사독재 17년(1973~1990년) 동안 강제로 붙잡혀 고문당한 시민들이 4만18명, 정치 고문 속에 죽거나 행방불명된 시민들은 3065명에 달한다(2011년 공식 집계 기준). 이렇게 확인된 희생자들은 1990년대 민주화 이후 발굴된 유골과 DNA 대조를 통해 확인된 숫자다. 아직도 1200명의 시민이 행방불명자 목록에 올라 있다.

아옌데 정부는 남미에서 합법적인 민주 선거를 통해 처음으로 들어선 사회주의 정권이었다. 1908년 태어난 아옌데는 소아과 의사 출신이었다. 1970년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당시 미국이 경계하는 좌파 성향의 급진 개혁을 펼쳤다. 아옌데 정부는 구리·석탄·철강 산업을 국유화하고 산업의 핏줄 격인 시중은행의 절반 이상을 국유화하고 지역 농장도 국유화했다.

'좌'냐 '우'냐를 넘어 개혁에는 항상 취지라는 게 있다. 아옌데는 칠레에 만연한 빈부격차와 정치 부패를 해결하고 싶었고, 그가 택한 수단이 왼쪽으로 향해 있었다.

아옌데의 개혁이 3년여 만에 주저앉은 건 두 가지다. 국내에선 보수 엘리트와 군부가 반대했다. 개혁이 급진적이다 보니 자영 농민이나 중소기업인들 불만도 높아져 갔다.

해외에서는 마침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 미국이 '공산주의' 혁명을 원하지 않았다. 이른바 도미노 이론이라고 해서, 뒷마당으로 여기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하나가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하면 줄줄이 그쪽으로 향할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2000년 12월, 빌 클린턴 미국 정부는 미국 중앙정보부(CIA)의 피노체트 쿠데타 개입 보고서를 공개하고 유감을 표했다.

이런저런 인권 학살 만행을 저질렀지만 피노체트 이후 칠레 경제는 급성장했다. 이것을 두고 독재의 효율성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지는 개개인의 판단이다.

다만 칠레 시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를 잊은 사람들에게 미래는 없다(Un pueblo sin memoria es un pueblo sin futuro)'는 말이다. 이 말은 수도 산티아고에 있는 국립경기장 '존엄의 관람석'에 적혀진 말이다. 존엄의 관람석은 1973년 9월 피노체트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직후 고문 당하고 죽어 사라진 사람들을 위한 자리다.
 

브라질 보우소나루 대통령(좌)와 바첼레트 UN인권최고대표.
▲ 브라질 보우소나루 대통령(좌)와 바첼레트 UN인권최고대표.

이런 역사의 아픔을 일부러 모른 척하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지난 4일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가 브라질에서 민주주의 공간이 위축되고 있다고 했는데 칠레는 1973년에 좌파 정권을 없애지 않았다면 지금쯤 쿠바 같은 나라가 됐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바첼레트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스타일로 브라질 문제와 주권에 간섭한다"면서 "그녀의 아버지는 1973년 당시 좌파 공산주의자였다"고 전적을 문제 삼았다.

문제가 불거지자 세바스티안 피녜라 현 칠레 대통령은 "고통을 겪은 바첼레트 대표 부녀에 대한 브라질 대통령 발언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민주주의와 자유는 어디서나 지켜져야 한다"고 밝혔다. 피녜라 대통령은 국내에선 기업가 출신 우파 대통령으로 통한다.

브라질 변호사협회와 인권단체인 '블라디미르 헤르조그 연구소'는 10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자국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고발할 예정이라고 지난 5일 밝혔다. 군사 쿠데타를 지지하고 군사독재를 옹호하는 발언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칠레 대통령을 지낸 바첼레트 대표는 1975년 피노체트 정권 요원들에게 체포돼 고문을 당한 적이 있다. 1973년 피노체트 쿠데타 당시 공군 장성이었던 바첼레트 최고대표의 이버지인 알베르토 바첼레트 역시 쿠데타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고문 당하다 1년 만에 옥사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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