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라키스 작성일 : 2019-07-10 12:08:32 조회수 : 303
국가 : 아르헨티나 언어 : 한국어 자료 : 정치
출처 : 연합
발행일 : 2019-07-10
원문링크 : https://www.yna.co.kr/view/AKR20190710002000087?section=international/centralsouth-america

경제위기로 불명예 퇴진한 데 라 루아 아르헨티나 前대통령 별세

심장질환으로 81세 생 마감…마크리 대통령 "민주적 행적 인정받을 만해"
페르난도 데 라 루아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 [AFP=연합뉴스 자료 사진]
페르난도 데 라 루아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 [AFP=연합뉴스 자료 사진]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국기헌 특파원 = 아르헨티나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 불명예 퇴진한 페르난도 데 라 루아 전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1세.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그의 민주적 행적은 모든 아르헨티나의 인정을 받을 만하다"며 애도를 표했다.

데 라 루아 전 대통령은 심장질환과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고 국영 뉴스통신 텔람은 전했다.

그는 정직하고 청렴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에 힘입어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했지만 최악의 경제위기와 대규모 시위에 밀려 불명예 퇴진했다.

아르헨티나는 카를로스 메넴 전 대통령 정부(1989∼1999년) 말기인 1998년부터 경제위기를 겪기 시작했다.

1999년 실업률은 20%에 달했고 국제통화기금(IMF)에 대한 부채는 1천280억 달러였다.

1999년 12월 10일 데 라 루아 전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도 경제 장관이 수시로 교체됐고, 연일 시위가 벌어지면서 경제는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했다.

2001년 11월이 되자 외국인 투자가들이 자본을 빼가기 시작했고, 은행들은 줄줄이 파산했다. 12월 2일 정부가 은행 자산 동결을 선언하자 시위대가 슈퍼마켓과 은행을 공격하는 등 혼란이 극에 달했다.

데 라 루아 전 대통령은 12월 19일 위수령을 선포하며 정국수습에 나섰으나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로 39명이 사망하자 다음 날 사임을 발표한 뒤 헬기를 타고 대통령궁을 떠났다.

이후에도 혼란이 계속되면서 열흘 사이 대통령이 세 차례나 바뀐 끝에 2002년 1월 2일 에두아르도 두알데 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아르헨티나는 서서히 안정을 찾았다.

데 라 루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의원 매수 혐의로 기소됐지만 2013년 12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2000년 노동법 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상원의원들을 매수하려고 500만 아르헨티나 페소(약 8억원)의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당시 노동법 개정은 IMF 요청에 따른 것으로, 노동계에 불리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1937년 코르도바에서 태어난 데 라 루아 전 대통령은 코르도바대 법대를 졸업한 뒤 21세부터 변호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4년간 내무부에서 관리로 일한 뒤 사회민주성향의 라디칼당(급진당)에 입당, 1973년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델 라 루아 전 대통령은 1996년 치러졌던 부에노스아이레스 첫 민선시장 선거에서 당시 화려했던 경력의 여당 후보를 물리쳤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으로 3년간 일하면서 재정적자를 해소하는 등 능력을 인정받았고 1999년 10월 치러진 대선에서 당선됐다.

penpia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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